나는 '브런치' 초기 때 '작가 신청'을 하여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팀에서 보낸 축하 메일을 받은 후 하늘을 나는 듯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 동안이었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글 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브런치에 한 편의 글도 올리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다. 결국 '브런치 작가'는 해지되었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 갔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오래간만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나도 모르게 '브런치'를 클릭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브런치'는 성장해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작가들이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 브런치(brunch)를 접했을 때처럼 설레었다. 다른 작가들이 올린 글들을 읽으며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거처럼 편안하고 가슴 한 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와 만나 서로의 얘기를 들려주는 거처럼 감동적이었다.
앞뒤 생각도 없이 무작정 '작가 신청'을 클릭했다. 전자책이지만 로맨스 소설을 출간했고 오래전에 '작가 신청'을 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판단은 빗나가 보기 좋게 탈락하고 말았다.
재신청하였으나 또다시 탈락하였다. 세 번 네 번 탈락하고 나니 자신감도 점점 사라졌다. 실망도 되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맘은 1도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을 내어 브런치에 접속해 다른 작가들이 올린 글들을 구독했다. 작가마다 다른 주제마다 나에게 속삭이듯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다들 경험이 풍부하고 경력도 화려한 데 글까지 잘 쓰다니 정말 부러웠다.
민화 '우물 안의 개구리' - 해정 조 우련 作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이 세상 전부인 줄 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을까! 이 우물 안 개구리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아침에 눈 뜨면 직장에 나가고 저녁에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내가 아까운 시간을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를 사랑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둘째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고 유품(遺品)을 정리하다 즐겨 읽던 책 사이에서 오빠가 습작한 시(詩) 들을 찾았다. 하얀 편지지에 만년필로 적어놓은 시들을 읽으며 시인(詩人)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오빠가 살고 싶었던 그 시간을 나만이라도 잘살아야겠다 생각했다.
픽사 베이 - 만년필 편지
여고생이었을 때 이야기이다. 우리 학교는 봄, 가을로 교내 문예백일장과 합창대회가 열렸다. 버스에서 내리면 긴 진입로를 걸어 등교를 해야 했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꽃이 여름이면 소공원 대공원에 장미꽃들이 만발했다.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눈이 오면 공원도 산도 모두 하얗게 변했다. 계절마다 풍경이 바뀌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문예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였고 백일장에서 장원을 수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고 졸업 후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학년 때는 처음 듣는 강의시간이라 재미있었다. 나처럼 직장에 다니는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은 좋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의욕(意慾)을 잃고 있었다. 문예창작 관련 공부를 하고 싶었던 나는 광범위하고 이론적인 강의가 어렵게만 생각되었다. 4학년 말 졸업학점 부족으로 결국 자퇴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제작된 콘텐츠를 이용, 매일 게시판에 한편씩 글을 올렸다. 올린 '시'들을 읽은 직원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어 퇴근 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로맨스 소설을 연재하였다. 다행히 연재가 끝날 때마다 전자책 출간을 제안받아 출간할 수가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할 때는 몰랐다. 그런데 세 번째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끝'을 쓰는데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한 권의 소설이나 어떤 작품을 완성한 후에 느끼는 감정은 여자가 아기를 낳은 후 느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같을 거라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처럼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작가는 항상 많은 생각과 다양한 경험, 그리고 수많은 책들을 접하며 깨닫고 내 것으로 만든 후 글로 옮겨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글은 언제라도 쓸 수 있으니까 내일부터 시작하면 되지.'라며 그 게으름을 합리화시켰던 거다.
이런 틀에 박힌 나의 생각을 과감하게 바꿔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욕심은 접어야만 했다. 또 통과하지 못하면 100번이라도 도전하리라 마음먹고 다섯 번째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초조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작가 신청한 후 이틀째 되던 날 오후였나! 퇴근하기 전 받을 자료가 있어 메일함을 여는 순간 메일 목록에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란 e메일이 눈에 띄었다.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드디어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설렘으로 모든 이들에게 너그러워졌다. 이 순간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나에게 기회가 온 거라 생각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라고.
내 앞에 놓여 있던 벽을 만든 사람은 나였고 그 벽을 허물 사람 또한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참으로 감사했다. 나에게 가슴 가득 설렘을 주는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는 지금처럼 글을 쓰고 읽는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도 의미가 퇴색되고 잊힐 날이 오겠지만 바로 '오늘'이 기회라고 그리고 '행운'은 바라는 이가 '최선'을 다해 이루고자 할 때만 찾아온다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