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겨울 전설의 서막이 오르고

by 금다요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때는 아주 아주 오래전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마당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나뭇가지에도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 초가지붕들 위에도 밤새 소리 없이 내린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뜰마루에 앉아 처마 밑을 올려다보니 마치 고드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방금 올라온 햇살에 고운 무지개 색을 띠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집 대문 앞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늘 그늘져 있었다. 누구라도 앞장서 눈을 치우지 않을 때에는 금방 눈이 쌓여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검은 고무신 속으로 눈이 파고들어 발등이 뻘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1953년 6. 25 한국전쟁이 휴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모든 게 힘든 시기였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인데도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이미 3남 2녀의 자녀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 처가 식구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에 그녀까지는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그녀의 아버지 집안은 고향인 충청도에서도 부농(富農)에 속하는 편이었다. 자손이 없는 먼 친척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데다 그 집안 또한 제법 넓은 논과 밭, 그리고 산을 소유하고 있어 지역 유지 소리를 들으며 먹고 살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인 도박에 빠져 처자식을 멀리했고 고향땅에서 살 수 없게 되자 도시로 나가면 더 잘 산다는 누군가의 꼬임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아버지는 싸리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들어오는 날보다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는 아예 발걸음을 끊었다.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늦은 밤 어머니의 품을 찾아 밤을 새우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아기가 생긴 것도 모른 채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임신한 것을 뒤늦게 안 그녀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집안 살림살이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삼시세끼 챙겨 먹는다는 생각은 불가능해 보였다. 사정이 이런 터라 임신을 하였다고 해도 아기한테 미칠 영양소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만삭의 상태에서도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어린 5남매와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녀의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의 소개로 어느 집 일을 나갔다. 오후 늦게서야 일이 끝나 제비집처럼 어린 5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쌀 몇 톨을 넣어 시래기죽을 만들어 5남매와 끼니를 겨우 때우고 잠자리에 누웠다.


오후 늦게부터 간격을 두고 진통이 오더니 조금 전부터는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붙잡고 어린 남매들 사이에서 산통을 겪고 있었다. 아이들을 이웃집으로 보낸 후 산파 할머니와 그녀를 받았다. 지금처럼 의술이 발전된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를 탯줄도 산파 할머니가 여러 번 가위를 소독한 후 잘라야만 했다.


그녀는 내가 받은 아기들 중에 가장 작고 발육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라는 나의 말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만 지은채 그녀를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아래로 또르륵 굴러 떨어질 거만 같았다.


뜨거운 물을 묻힌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씻기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또다시 잠이 들었다. 그녀의 잠든 얼굴은 정말 평온했다. 천사의 얼굴처럼 아름다웠다. 그 속에는 영롱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난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인생이 건강하고 행복만 가득하길 빌었다. 새근거리며 잠이 든 그녀의 작은 얼굴에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와 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