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 바이오리듬(biorhythm)의 균형이 깨졌는지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무슨 변고람. 옆에서 맛나게 잠자는 이도 있는데. 사방은 고요하고 깜깜했다. 이따금 모기 한 마리가 왱왱 소리를 내며 내 귓가를 맴돌고 있어 불을 켜야 하나 고민하다 노트북을 켰다. 전원이 들어오고 모니터가 환해지는 순간 모기가 날아와 보란 듯 내 뺨을 세게 한방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아! 분하다.
< 네 이놈! 날이 밝으면 내 기어코 너를 잡아 주리를 틀리라. >
지금 생각해도 웃겼다. 무슨 코미디를 찍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원맨쇼를 다하다니 분명 이상한 날이다. 조심해야지. 또 물릴까 봐 주변을 경계하며 뉴스와 연예계 소식을 차례대로 검색했다. 배우 박민영의 공항패션에 대한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시청하는 내내 같은 말인데도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있어 검색해보기로 했다.
* 최애 : 가장 사랑함.
* 차애 : 다음, 두 번째로 사랑함.
* 덕후 :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 '오덕후'의 준말, 어떤 문화, 취미에 과한 몰입하는 이.
* 머글 : 덕후가 아닌 일반 사람을 뜻함.
* 덕질 :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 성덕 :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
* 입덕 : 어떤 분야나 사람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함.
* 탈덕 : 어떤 분야나 사람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그만둠.
* 셀럽 : 유명인사.
* 덕통 사고 :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어떤 계기로 어떤 대상에 몹시 집중하거나 집착하게 됨.
* 덕밍 아웃 : 자신이 덕후라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
난 머글이었다. 휴일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이런 내가 '브런치(brunch)'에서 작가 활동을 하게 되었고 다른 작가들이 정성스럽게 올린 글들을 구독하면서 나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작은 불씨에 바람이 닿은 것이다. 화산의 용암처럼 뜨거운 그 뭔가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지도 생각할 여유가 없어 그냥 무심한 척 시간만 보냈는데 매일매일을 덕질하는 덕후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말 알아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살아있는 동안 다 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버킷리스트(Bucket list)도 꼼꼼하게 살폈다. 지루했던 일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 중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덕미는 시안이 라이언 골드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좋아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도 확실히 한다. 덕미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가 잘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 이렇게 덕미가 시안을 덕질하는 동안, 덕미가 라이언 골드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난 '브런치(brunch)'를 덕질하고 있었다.
나도 성덕이 되고 싶다. 이 간절함으로 나의 시간을 집중하고 있다. '브런치(brunch)'의 성덕이 된 작가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이 곳에서 나름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그 재능을 또 다른 이들과 나누며 덕질의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
'브런치(brunch)'에 입덕 하였으니 그냥 덕후는 싫다. 성덕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덕질을 해보리라.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나의 태양이 뜨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