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생각이 마음이 어느 시간대와 맞닿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숨이 멈춰버릴 정도로 아득해지며 그 시간과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황당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시간 여행'이라든지 '순간 이동'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한 게 가능해진다면 난 제일 먼저 '어느 시간대'와 '누구'를 만나러 가게 될까 생각해본다.
2주 전부터 남편과 중단했던 산행(山行)을 다시 시작했다. 등산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전 장동산림욕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1995년 6월에 개장하였으며 '피톤치드'와 '숲 속 맨발 걷기' 테마로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많은 등산객이 찾아오기 때문에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도로 양쪽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가득찼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물이 흐르는 냇가를 지나 휴양림 입구를 향해 걸었다. 입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작은 호수가 보인다. 그곳에는 산을 찾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평상과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부터 길이 나누어진다.
우리는 늘 오른쪽 길을 이용한다. 그래야 산을 내려올 때 숨이 덜 차기 때문이었다. 중간지점쯤 도착했을 때였다. 예전에는 이 지점에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건강해지고 자연과 멀어질수록 병과 가까워진다.'라는 홍보판이 있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그 자리에는 황톳길 조성을 위하여 황토를 쌓아놓고 비닐로 덮어 놓은 게 보였다.
대전 장동산림욕장에서
그 홍보문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 사실 다시 이곳을 찾자 맘먹은 것도 그 글귀가 생각나서였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핑계로 산을 찾지 않았다. 혼자 있을 귀차니즘 아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도 덩달아 컴퓨터만 만지작 거렸다. 퇴근하면 잠깐 동안 자전거만 탈뿐 두 사람 모두 운동량이 부족했다. 병원 정기검진 때면 원장님께서도 '규칙적인 숨쉬기 운동도 중요하지만 근력운동도 중요하니 꼭 하세요.'라고 조언을 할 정도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주말이나 휴일에 집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차 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엄마는 제일 큰 즐거움이 사위들이 운전하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서 풍경을 보는 걸 최고로 여기셨다. 평일에는 출근하는 막내딸 때문에 매일 혼자 계셔야만 했기에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엄마를 모시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 마당에서 어르신들과 계시다가도 '드라이브'가시자 말씀드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이런 엄마의 취미생활로 인해 남편은 결혼 전부터 주말에는 엄마를 모시고 나가는 게 일이었다. 참 다행스러웠다. 남편이 나같이 무뚝뚝하지 않고 살가운 사람이어서.
<오늘은 뭐 드시겠어요?>라고 남편이 물으면 엄마는 <내가 살 테니 고기 먹으러 가지.>하고 말씀하신다. 그날 엄마가 정하는 메뉴에 따라 우리의 드라이브 코스가 정해졌다. 고기를 워낙 좋아하시는 엄마는 고혈압에 과체중이셔 산책도 하고 평상에서 얘기도 나누다 저녁 식사하러 가려고 휴양림을 정하고 이곳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내려 저수지 옆 평상까지 올라오는데도 쉬기를 몇 차례 하시더니 도착해서는 우리만 정상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정상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포기하고 평상에 앉아 미리 준비해 간 팥빙수를 나눠 먹으면서 셋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보이는 것에 느껴지는 기쁨이 더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숲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적당한 온도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빛을 발하고,
먹을 것을 찾아 나무 아래까지 내려오는 다람쥐의 모험,
졸졸졸 쉼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시냇물,
우리가 앉아있는 평상 옆을 지나가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며 지나가는 젊은 여인네들
함께여서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4일 막내딸이 출근한 사이에 쓸쓸하게 혼자 천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란 존재의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행복해질수록 그 시간과 그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이 산림욕장을 찾으면 날아다니는 나비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느껴지는 게 다르다.
다시 찾은 이곳은 우리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 시원한 바람과 웅장한 새들의 합창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산길을 걷는 내내 나무와 무성하게 자라 있는 풀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남편은 이른 아침 안개로 드리워져 있을 산을 보고 싶다고 하여 이번 주부터는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산행을 하기로 약속하며 산림욕장을 나왔다.
pixabay - 안개. 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