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풍경이다.

한 컷 부탁할게요.

by 금다요

집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면 가는 길에 여러 개의 버스 정류장을 거쳐간다. 신호등에 걸려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쳐다보게 된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아저씨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쳐다보는 젊은이, 그리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남학생이 보였다.


막 우리 차가 출발하려 할 때였다. 새벽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가시는지 큰 보타리를 머리에 인 할머니 한 분이 급한 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해 걷고 계셨다. 할머니는 정류장 바닥에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시고 대충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셨다.


할머니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운 할머니 허리를 볼 때는 집에서 편하게 쉬셔도 될 연세이신 거 같았다. 여러 감정이 내 안에서 거세게 몰아쳤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실 텐데 이 새벽에 저렇게 무거운 보타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맘이 편치가 않았다. 괜히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할머니 가족들이 미워졌다.






할머니 때문인지 엄마 생각이 났다. 휴일에는 우리 차로 엄마를 모시고 다닐 수 있었지만 평일에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혼자 다니시곤 했다. 그 날은 셋째 이모(姨母) 생신이라 이모 댁으로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셨단다. 버스 한 대가 정차하고 앞문이 열리더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랐고 엄마 차례가 되었단다. 버스 노선이 전면 개편된 후라 버스 기사님에게 이모 댁 동네로 가는 버스인지 물으셨단다.


그런데 휴~ 엄마한테 날아온 기사님의 답변은

<할머니! 버스 외벽에 노선 쓰여 있잖아요. 못 읽으세요? 버스 노선을 모르면 버스 타지 말고 택시를 타셔야죠.>

라고 타박을 하셨단다. 기사님 눈에도 우리 엄마 연세(年歲)가 많게 보였나 보다. 혹시 버스를 잘못 타 헤매실까 봐 걱정되는 맘에 말씀하셨을 테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타박을 받고 보니 기분이 엄청 상하셨던가보다. 엄마는 퇴근한 나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셨다.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던데 엄마 같은 사람한테 그리도 면박을 주니 창피해서 혼났다.>라고


엄마의 얘기를 들은 나 역시 화가 올라와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니 엄마는 듣고만 계셨어요? 노선이 변경되고 처음 타는 거라고 말씀을 하셨어야죠.>

<기사양반 인상이 얼마나 무섭던지 말할 수가 없더라고. 내가 말 한마디 못 하고 쳐다만 보니까 신사 한 분이 나서서 주의를 주더라 고맙게도.>라고 말씀하시며 비로소 웃으셨다. 아마도 그때 엄마는 나의 화나는 모습을 보고 <내 편이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셨나 보다.


엄마의 웃으시는 얼굴을 보니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분명히 자기도 부모님이 계실 텐데. 버스노선을 잘 모르면 친절하게 알려주면 될 것을. 자존심 강한 엄마의 맘이 얼마나 상했을까 생각하니 내 맘도 몹시 불편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고속도로로 진입할 때까지 뒤돌아 할머니를 쳐다봤다. 버스가 가더니 정류장에서 정차하지 않고 지나쳐 멈췄다. 할머니가 큰 보따리를 들으려 하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젊은이가 할머니의 보따리를 번쩍 들고 버스에 오르는 게 보였다. 내가 계속 뒤를 쳐다보자 남편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왜!>


나는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피식피식 웃었다. 이 아침이 나에게 기분 좋은 선물을 가슴 속 가득 안겨줬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그래! 저거지'라고 되뇌었다. 할머니가 그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오르셨다면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을 텐데.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가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아니 우리가 때때로 힘겹고 피하고 싶은 상황에 직면해도 그 순간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저런 젊은이가 있어서가 아닐까.


사람마다 수많은 풍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느 때는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와 시선으로, 또 어느 때는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을 땀방울로 감추고 걸어가는 저 할머니처럼. 맞닥 드리는 그 순간이 아름다운 풍경화로 오래오래 남도록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다. 나는 스쳐간 인연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그 인연은 나에게 어떤 풍경으로 감동을 주었는지를......



couple-1209790__340.jpg pixabay - 연인. 저녁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