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안녕처럼.

그녀에게로

by 금다요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해맞이를 하면서 일 년을 어떻게 보낼지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지 계획을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도 있다는데. 난 그녀와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병원을 떠나는 두 모녀를 배웅하기 위해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병원이 어려워지면서 인원을 줄일 거라는 소문은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지만 새해가 되면서 현실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직원 모두 대상이 되었던 터라 두세 명만 모여도 누가 떠나게 될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전날 밤 내가 그녀의 방으로 건너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와 자신이 떠나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거 같다. 방바닥에는 장롱에서 꺼낸 옷들이 차곡차곡 개어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만들어준 장난감들도 잠들어 있는 그녀의 머리맡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며 할 말을 잃고 잠든 그녀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일찍 원장실에 들어간 그녀의 어머니는 해고 통보를 받았는지 창백한 얼굴로 복도로 나왔다. 그녀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의 어머니는 어젯밤에 정리한 가방과 보따리를 챙겨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병원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두 모녀가 병원을 떠난다는 소식에 직원들도 마당으로 모였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와 발랄한 모습으로 인하여 병원을 찾는 환자 가족들까지 그녀를 궁금해하고 예뻐했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뒤의 일상이 두려워졌다. 그녀와 함께 하는 동안 그녀에게 길들여진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도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있었다. 내 얼굴을 때리는 겨울의 찬 바람 때문인지 괜히 눈물이 흘렀다.



얼마 후,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두모녀가 머물고 있는 곳은 충북 옥천에 있는 규모가 작은 병원이었다. 병원 옆으로 뽕나무 밭이 가득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 덕분에 아침이면 병원 근처에 사는 쌍둥이 형제들이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산보를 나간다고 한다. 어느 날은 검은 오디를 얼마나 먹었는지 입술 주변이 새까맣게 얼룩이 져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 모습 때문에 덩달아 웃었고 또 어느 날에는 주변에 있는 저수지를 보고 와서는 바다를 보고 왔다고 엄마는 바다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녀의 바다가 궁금해졌다.



sandbox-1583289__480.jpg pixabay - 모래사장, 어린이 장난감



끝으로 두 모녀가 머무는 방은 뽕잎으로 누에를 기르는 방으로 밤에는 잠들지 못한 누에들이 뽕잎을 찾아다니다 그녀의 얼굴을 기어올라 놀란 그녀가 잠에서 깨어 울기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으며 '참 다행이다.'란 생각이 드는 마음 한 구석으로 쌍둥이 형제에 대한 이상야릇한 마음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어린 쌍둥이 아이들이라니.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싶은 맘은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아니 그녀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백지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펜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서두에 '친애하는 0 여사님에게'라고 적고 또다시 한참을 망설인 후 0월 0월 0시에 그곳을 방문하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