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우리의 출근이 빨라서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사무실로 향하는 도로 위는 한산했다. 달리는 차 앞으로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져 마치 영화에 나오는 어느 해안도로를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상도 이런 기분을 알아챘는지 라디오에서는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이란 팝송이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전 배우 한석규와 김윤진이 출연했던 영화 '쉬리'에서 처음 들은 순간부터 즐겨 들었던 이 팝송을 듣자 감동이 밀려왔다.
요 며칠 무거웠던 기분은 사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살아나는 걸 느꼈다. 큰 소리로 웃지 않아도 소리 없이 잔잔한 미소만 지어도 가슴속이 찌릿찌릿해오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부슬부슬 소리 없이 차창에 내리는 가랑비는 유리창에 수많은 물방울을 남겼다.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으니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위해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운전학원을 다닐 때가 생각났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던 내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학원 강사는 차의 기능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오른쪽 깜빡이를 놓고 진행하라는 말에 와이퍼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학원 강사는 주눅이 들어있는 나를 향해 <지금 비 오고 있습니까? 오른쪽 깜빡이 버튼을 누르라니까 왜 와이퍼를 켜십니까! 빨리 오른쪽 깜빡이 버튼을 누르세요. 지금 비 안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 그 날의 교습시간 정말 망했었다. 뒷좌석의 참관 생까지 타고 있어 창피한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탄 승객들 모두 눈물 콧물 다 빼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느라 학원강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아주 짧게 끝나버린 운전교습 첫날이었지만 운전석에 앉은 것만으로도 세상을 구한 거처럼 아주 큰일을 한 것이라 나 자신을 위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