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어쩌면 좋을까.
그녀와 보낸 하루는 너무나 짧았다. 그녀가 바다라 생각하는 호숫가에 내려갔을 때도 그녀가 병원 근처 뽕나무밭에서 잘 익은 오디 하나를 따 내입에 쏙 넣어 줄 때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정말 싫었다.
오래간만에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그녀가 가자는 데로 따라갔다. 그녀는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었다는 병원 뒷산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100여 미터쯤 위로 올라가자 큰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의 손을 놓더니 날다람쥐처럼 큰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큰 바위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신발을 벗어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신발은 왜 벗어? 풀잎에 베이면 어쩌려고.>
<괜찮아. 내가 먼저 저 위로 올라갈 테니까 따라 올라와야 돼.>
그녀는 말리기도 전에 재빠르게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위 아래에 서있는 나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도 신발을 벗어 그녀의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은 후 바위를 안았다. 몸이 무거워진 탓인지 그녀처럼 한 번에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중간쯤에서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녀는 내가 바위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깔깔거리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괜히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너 그렇게 웃으면 여기 두고 나 혼자 내려간다.>라고 말해도 그녀는 나를 향해 산이 들썩거릴 듯 큰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떼었다.
<안 웃을게. 빨리 올라와.>
여러 번 미끄러지기를 반복한 후에 바위 위로 올라갔다. 바위 위는 아래서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평평했다. 그녀 옆에 앉았다. 병원 마당이며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물동이를 들고 나와 마당에 물을 뿌렸다. 마당에 물이 번지며 그림이 그려지더니 하얀 먼지가 날리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병원 입구를 잠시 쳐다보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말없이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이따 갈 거야?>
그녀는 앞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음. 가야지.>
<안 가면 안 돼? 우리랑 같이 여기서 살자. 음?>
그녀의 말에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에게 똑 부러지게 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녀의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려가자. 엄마가 우리 찾으신다.>
바위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쉬웠다. 미끄럼을 타듯 내려와 그녀가 내려올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거의 내려왔을 때쯤 그녀를 받아 안았다. 그녀를 한두 번 품에 안은 것도 아닌데 파고드는 그녀의 따뜻함이 다른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쉼 없이 종알종알거렸다. 병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마당으로 나오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는 것을 본 그녀의 어머니가 내게로 걸어왔다.
<저 방에서 자고 있어요. 누에고치를 키우는 방인데 자기 방이라며 저기서 자주 잠이 들곤 해요.>
그녀의 어머니 말에 방을 열자 그녀가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애벌레 한 마리가 꿈뚤거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애벌레를 뽕잎에 옮겨놓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방 한쪽에는 시장 갔을 때 사준 한복이며 빨간 목도리가 예쁘게 놓여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지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가려고?>
<음? 음! 가려고. 차 시간 놓치면 안 되니까 지금 나가야 해.>
그녀가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더니 금방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왜 울어! 또 올 거야. 금방 또 보러 올게.>
그녀는 두 손으로 나를 꼭 안아줬다.
<꼭 빨리 와야 돼. 알았지?>
나는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도 따라서 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젠 아저씨한테 시집가는 거야?>
<뭐 나한테 시집온다고?>
<음.>
웃음이 나왔다. 역시 그녀는 변한 게 없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나의 여행용 가방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 선생님! 지금 나가야 버스 타실 수 있어요. 가방에 계란 몇 알 삶아 소금과 같이 넣었어요. 숭늉도 병에 담아 넣었으니 버스에서 드셔요.>
<감사합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뽕나무 밭을 지나고 호수가 보이는 길까지 따라 나왔다. 길 끝쯤에서 버스가 연기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버스가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정차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돌아서 버스에 올랐다. 두 모녀는 내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