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서리
옥천에서 그녀를 만나고 대전으로 돌아온 지 8개월이 다돼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한 달에 한두 번은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오곤 하였는데 몇 개월째 뚝 끊기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병원 복도나 마당에서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리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던 어느 날. 병원 마당이 시끌벅적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마당으로 나가니 그녀의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자 서있었다.
<언제 오셨어요? 그런데 왜......>
그녀의 어머니는 말없이 나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아이가 지금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어요. 생각나는 사람이 박 선생님밖에 없어서 달려왔어요.>
나는 놀란 맘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의 팔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 손을 잡았다.
<들어가서 가방 좀 가지고 나올게요.>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 온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진료실로 들어가 붕대와 상비약을 챙겼다. 그리고 조금 전 그녀 어머니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생각나 내가 가지고 있던 청심환을 가방에 넣어 마당으로 나왔다.
<가시죠. 그런데 어디에 있죠?>
그녀의 어머니는 나의 물음에 답할 여유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는지 숨이 차다 못해 목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더 가야 하나요?>
<저기 딸기밭 옆 초가지붕이에요.>
<알겠어요. 제가 먼저 가볼 테니 뒤따라 오셔요.>
싸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아이들과 아주머니들 사이에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볼맨 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아이 상처를 봐야 하니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하나 둘 마당으로 내려가자 마루에 누워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도 도착해 그녀 옆에 앉았다. 나는 솜에 소독약을 묻혀 피를 닦아냈다. 그녀의 상처를 보는 순간 놀라 말문이 막혔다.
<이 상처는 왜 난 겁니까? 몇 바늘 꿰매야 될 거 같습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제가 던진 돌에 윤희가 맞았어요.>
<네가 왜 던진 거니?>
그 아이는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울고 있었다.
<아저씨! 윤희 죽어요?>
이 상황에서도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놓이며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 상처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상처는 평생 남아 오늘을 기억나게 할 거야. 앞으로 이렇게 위험한 놀이는 안 하는 게 좋겠다. 알았지?>
<네.>
붕대를 작게 자른 후 양 옆을 반창고로 고정시킨 후 그녀의 상처 난 곳에 붙였다. 하얀 붕대에 붉은 피가 묻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는 그녀를 안아 그녀의 방에 뉘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따라 들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박 선생님!>
<언제 돌아오셨어요?>
긴장이 풀리자 돌아온 것을 알리지 않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은근히 섭섭하고 화가 났다.
<선생님 다녀가시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돌아왔어요. 그곳 원장님이 병원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아들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가게 되어서요.>
<그런 일이 있었음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나는 잠들어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제가 윤희를 얼마나 아끼는지 아실 텐데. 정말 섭섭합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아세요? 돌이 조금만 아래로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조금 전에 그 남자아이가 말한 게 사실인가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나를 바라봤다.
<옥천에서 살 때는 매일 쌍둥이 오빠들하고 호수니 산이니 들로 뛰어다니다 이곳으로 돌아오자 허전했던가봐요. 이 동네는 여자아이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저보다 나이 많은 남자아이들을 따라다녔는데 장난으로 자두밭 서리를 갔었대요. 자두를 따다 밭주인이 키우던 개가 달려와 도망치다 개를 쫓으려고 돌을 던진다는 게 우리 아이가 맞은 거예요.>
그녀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가 눈을 떴다.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다가 일어나 앉았다.
<아저씨!>
그녀는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나의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던 화가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많이 아팠지?>
그녀는 말없이 손으로 상처를 만졌다.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나 죽는 거야?>
<아저씨가 치료해서 안 죽어. 그렇지만 여기에 작은 상처가 남을 거야.>
<헤헤헤.>
그녀가 치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직 익지 않은 파란 자두였다.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두 서리를 한 것이었다. 그녀의 철없는 행동이 어이없었지만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줘야만 했다. 못 본 몇 달 사이에 그녀는 키도 자라고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소독해줘야 합니다. 병원 오시기 어려우면 제가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녀에게 하루에 한 번씩 꼭 올 것을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나 또한 그녀의 아쉬워하는 눈빛 때문에 기운이 빠졌다. 그녀는 문밖에 서서 나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뒤돌아 설 때마다 작은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