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잘하나.

밤마실.

by 금다요

그녀가 덕고개라 불리는 동네로 돌아온 후 나도 병원 숙소를 나와 그녀가 사는 집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주변의 가까운 산과 들의 나뭇잎 색이 점점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작은 동산에 심어져 있는 여러 그루의 감나무에 열린 감들도 점점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갈 무렵 군청에서 '마을 위안잔치 겸 노래자랑'을 동네 냇가 옆 공터에서 개최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마침 군청에서 근무하는 김 씨 아저씨에게 전달받은 안내문을 홍보판에 부착하며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노래자랑이 열리는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이 시간이면 그녀는 꿈나라에 갈 시간이었다. 그녀에게 이 얘길 들려주면 속상해할 테니 안 하기로 맘을 먹었다.


매일매일 그녀의 얼굴과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를 보면서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깜깜한 밤에 그녀를 왁자지껄한 그곳에 데리고 가기는 싫었다.


노래자랑이 열리는 날이었다. 윗마을에 갔다 오는 길에 보니 공터에 천막이 하나 둘 쳐지고 그 앞에 작은 간이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이곳으로 온 후 처음 열리는 노래자랑이었다. 괜히 기분이 들뜨고 기대가 되며 자꾸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저녁이 되고 나는 공터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방은 불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잠들었나 보다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공터에 도착하고 자리를 잡고 노래자랑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맘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어머니가 본래 흥이 많은 사람인지라 이곳에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긴장된 무대 위와는 다르게 관객석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땡'하고 실로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내려오는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그녀를 잊고 있었다. 사회자의 다음 분 무대로 올라오라는 멘트가 끝나자 무대를 오르는 출연자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객석이 술렁거리는 반면 그녀는 거침없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객석을 향해 배꼽인사를 힘차게 올린 후 사회자를 쳐다봤다. 사회자 역시 예쁜 그녀에게 반한 표정이었다. 그는 그녀와 키를 맞추기 위해 무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 가까이 마이크를 댔다.


<몇 살이에요?>

그녀는 나이를 말하는 대신 긴장해 주먹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사회자에게 내밀었다.

<아! 다섯 살이구나. 그래요. 이름은?>

<윤희예요.>

<좋아요. 어떤 노래를 준비했나요?>

<음. 오빠 생각>

<좋아요. 잘 부를 수 있죠?>

<네.>

반주가 시작되자 그녀의 손은 허리에 가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살랑살랑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밤을 뚫고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마이크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거 같은 표정을 짓자 사회자가 뛰어나오더니 그녀를 번쩍 안았다. 말괄량이였던 그녀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잘 불렀어요. 우리 윤희한테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잊지 않고 객석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자. 엄마한테 갈까요?>

나는 일어나 그녀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 품에서 울고 있었다.

<윤희야!>

내가 그녀를 부르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나의 품에 안겼다.

<나 노래 보르는 거 봤어?>

<음. 봤지. 아주 잘 불렀어. 우리 윤희가 최고였어.>

언제 울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모습으로 출연자의 노래가 계속될 때마다 웃고 춤추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워했다.


pair-3798371__480.jpg pixabay - 가을. 연인. 초원



그녀의 첫 밤마실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그녀도 나도 빈 손으로 밤길을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손을 양 옆으로 펼쳤다. 다리가 아프니까 자기를 안아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처마 밑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밤벌레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듯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목을 두 팔로 안은채 내 품이 편안했는지 이내 잠들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점점 더 깊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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