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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Sep 19. 2019

[하루 20분 22일] 생각 없이 웃기로 하였다.

아! 이럴 수가.

며칠 전 자리를 옮기기 전 근무지에서 함께 생활했던 남자 직원 어머니의 부음 문자를 받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함께 근무할 때도 어머니가 병환 중이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황망한 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본가가 멀리 광양인지라 이튿날 오후 휴가를 내고 남편과 문상(問喪)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평일인 데다 가는 데만 몇 시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텐데 흔쾌히 함께 가겠다는 남편의 대답을 들으니 설레기까지 하였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높은 데다 맑고 푸르렀다. 이마에 닿는 바람도 시원한 걸 보니 돌아가신 분께서 평소 덕을 많이 쌓으셨나 보다 생각되었다.


매일 사무실에만 앉아있다 밖으로 나오니 날아갈 듯 기분도 가벼워지며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운전하는 남편도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한결 표정이 밝아 보였다. 주전부리라도 할까 싶어 휴게소에 들렀다.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터라 간단히 허기를 달래야겠다 생각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벤치에 잠시 앉아있을 때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70대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나를 쏘아보듯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착각이었나 싶어 잠깐 동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까지도 나를 쳐다보고 계셨던가보다.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뜻이 있겠지 생각했지만 앉아있는 동안 그 눈길은 나를 향해 있었다.


출발하기 위해 차를 탔는데도 그 어르신의 눈빛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혹시 우리 부부를 <불륜 커플>로 생각했나에 미쳤다. 평소에도 남편과 대화할 때 존칭어[尊稱語]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욱이 평일 오후에 자녀들도 없이 두 사람만 보이니 잠깐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 오늘은 또 이렇게 나를 웃게 해 주는구나.>라고 생각되었다. 혼자 피식피식 웃자 남편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궁금해했다. 창밖의 스치는 푸르름은 많은 생각과 여유를 찾게 해 줬다.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과 그리고 업무상 전화통화를 하며 순간순간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순간에 그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문상을 다녀와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예쁜 꽃 속에서 조용히 웃고 계신 영정 속의 고인(故人)이 생각난다.


<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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