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지난 후

이별 후의 만남.

by 금다요

경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그녀의 집에 인사차 들렀지만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동네 남자아이들이랑 마을 입구에 있는 동산으로 놀러 나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 만나지도 못하고 신혼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골든 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자리에 눕고 마셨다. 서울로 올라갈까 생각도 했지만 내가 올라간다 하여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주말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느라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일 년이 지나고 어느 가을 아침이었다. 일어나 창문을 여니 감나무가 보였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을 보니 서울에 갈 때 몇 개 따가야겠다 생각했다. 정리를 하지 못한 서재의 책들을 책꽂이에 꽂고 밖으로 나와보니 언제부터 내렸는지 마당의 패인 곳마다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마루에 앉아 담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비가 가랑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봤다. 마치 한 겨울에 흩날리는 눈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참 이상한 날이네. 비가 눈처럼 흩날리고 있으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 한쪽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천둥번개가 치듯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온 전화였다.

<상현이니!>

<네. 어머니!>

<놀라지 말고 들어. 아버지께서 조금 전 떠나셨다.>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현아! 상현아!>

나는 내가 눈물이 그렇게 많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빗물처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겨우 삼키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로 올라갈게요.>

<그래. 큰아버지 병원으로 모실 거니까 그리로 오렴.>

나는 대충 옷가지를 가방에 밀어 넣고 자는 아내를 깨웠다.


나는 아버지의 삼우제(三虞祭)를 마치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휴가기간이었지만 병원부터 들렸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장례식장을 찾아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그녀의 집에 들렀다. 그녀의 집 작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는 중일 거라 생각했다.


싸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자 안방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그녀가 아랫목에서 잠들어 있었다.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는데 그녀가 심하게 머리를 흔들고 손을 허공을 향해 흔들고 있었다. 놀란 나는 급하게 뛰어들어가 그녀를 깨웠다. 그녀의 얼굴은 땀에 젖은 머리가 붙어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를 확인하자마자 내 품에 뛰어들었다.

<왔구나. 이제는 엄마가 우리 집에는 안 온다고 말해서 진짜 안 오는 줄 알았어.>

<왜 안 와. 이렇게 왔잖아. 그리고 윤희야 지금처럼 무서운 꿈을 꾸게 되면 잠에서 깨면 돼.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니?>

<음. 계속 자지 말고 잠에서 깨라는 거지?>

<그래. 아저씨는 우리 윤희가 예쁜 꿈만 꾸면 좋겠는데.>

<알겠어. 앞으로는 무서운 꿈을 꾸게 되면 잠에서 깨도록 노력해 볼게.>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그녀가 나의 품에 안겨있으니 잠깐 동안이지만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와의 말소리 때문인지 그녀의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박 선생님! 얼마나 상심이 크세요. 가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모시고 내려왔습니다.>


나는 그녀를 무릎에서 내려 앉히고 일어나려 하자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가려고?>

<음 가야 해. 다음에 또 올게.>

<나. 봄 되면 학교 간다.>

나는 그녀의 학교 간다는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구나. 그녀가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윤희 학교 가면 아저씨가 뭘 선물해야 할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쳐다보며 도움을 청하는 듯싶었다.

<윤희야. 학교 가면 가방이 있어야 하는데 예쁜 가방 사줄까?>

<음. 좋아.>

<그래. 다음에 올 때는 꼭 윤희 가방 사 가지고 올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음. 기다릴게. 꼭 올 거지? 빨리 온다고 약속해.>

나는 그녀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한 후 그녀의 집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인적이 끊어진 동네길을 걸으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을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추수를 마친 논과 밭에는 볏단만 하나둘 쌓여있을 뿐 쓸쓸함만 더해갔다.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 때문인지 개 짖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걸음이 빨라졌다. 집이 보이고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괜스레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처럼 내 아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윤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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