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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Oct 01. 2019

[하루 20분 26일] 생각 없이 웃기로 하였다.

행복한 사람이지.

감기몸살이 끝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이 들수록 젊을 때마다 건강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게 나에게 한 말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 깨닫게 된다. 


원래 기관지가 약해 어렸을 때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환절기 때마다 영락없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또 맞이하게 되었다. 몸이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맘이 힘들어서일까. 이럴 때마다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난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합창대회에 백일장에 교회 문학의 밤 준비까지 정말 몸이 열개라도 못 배겨 날 정도로 바쁘게 쏘다녔다. 결국 몸이 견디다 못해 교회 '문학의 밤'이 끝나자마자 병이 나고 말았다. 


다른 날도 아니고 토요일에.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일어나질 못하자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린 후 160cm 넘는 큰 덩치의 나를 업고 20여분쯤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셨다. 그때 처음 엄마께서는 나에게 '우리 아가 이렇게 아파서 어쩌누'라고 한마디 남기고는 걷는 내내 꾸짖거나 뭐라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다. 병명은 심한 감기몸살에 영양실조였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엄마는 꽤 놀라는 눈치셨다. 


보리고개가 있어 못 먹던 시절도 아닌데 영양실조라니. 엄마는 몹시 충격을 받으셨는지 맞은편 병원 복도의 하얀 벽만 쳐다보고 앉아계셨다. 주사를 맞았으니 집까지 걸어가도 된다는 나를 엄마는 다시 업으셨다.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묵묵히 앞만 바라본 채 걷기만 하셔 나는 엄마의 등에서 못이 박힌 듯 가슴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언제 또 우리 엄마 등에 업히랴 싶어 눈을 감고 모르는 척 엄마의 체온을 가슴에 담았다.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몸이 아프니 엄마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살아났다. 그때의 광경이 스크린의 영화처럼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옛 기억은 늘 아련한 뭔가를 나에게 주며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아니지만 무한한 행복감과 그리운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짓는 그 웃음을 이 아침에도 얼굴 가득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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