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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Oct 10. 2019

[하루 20분 27일] 생각 없이 웃기로 하였다.

생각이 웃음으로 변할 때도 있지.

긴 장마도 끝이 있듯이 한 계절을 맞이하는 나의 통과의례인 감기 몸살도 끝을 보이고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감기도 진화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오늘도 스카프로 목을 칭칭 감고 출근길을 나섰다.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맘도 약해진다고 했던가. 아플 때 '웃는' 것도 참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슬픔'의 반대로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웃음'이었다. '웃음'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웃음'은 명사로 개념화되어 있지 않고, 동사 ‘웃다’의 명사형이었다. 웃을 때 우리의 근육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럴까! 


나의 '웃음' 도전기도 다른 작가들보다 아주 많이 늦었지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도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사연이 있어 정말 생각 없이 웃으며 나를 위로하기 위한 도전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웃음'에 대하여 수많은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막 자리를 옮기면서 시작한 '생각 없이 웃기로 하였다'는 나를 위로하였고 또 나에게 웃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순간이었다. 생각 없이 그냥 웃는 것은 어렵다. 분명 웃어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웃었던 것 같다. 웃어야 복도 들어온다는데 이렇게 인색해서야 '복'이란 기쁜 손님이 나를 찾아줄까 의문이다.  


아주 오래전 여름이었다. 여고생이었던 나는 수련회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어느 토요일이었다. 며칠간 집에서 혼자만 계셨을 엄마가 생각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을 향해 뛰었던 나는 골목 어귀에 나와서 서성이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엄마를 마루에 앉혀드리고 그 앞에서 수련회에서 배운 율동 아닌 뻣뻣한 나의 막춤을 보여드렸던 적이 있었다. 정말 동남아를 순회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가수인양 온갖 폼을 잡고 엄마 앞에서 재롱잔치를 열어드렸었다.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정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크게 웃었던 거 같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웃음'속에는 수많은 나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나를 지탱해주는 '웃음'의 이 의미가 너무나 소중하다. 


이 아침에 나는 나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모두가 소중하다. 그들이 나를 떠올릴 때 늘 웃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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