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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Aug 01. 2018

위기를 극복했던 나만의 방법

0801 이별극복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버는 삶이 당연하다 생각했었고, 
 
 옆에 있는 남자친구가 당연히 내 옆에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연하다 생각하던 상황에 문제가 생겼다면? 
 
 머릿속은 예상치 못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상실감, 슬픔, 괴로움, 분노, 미안함, 죄책감 등 여러 감정들이 내가 컨트롤하기 어렵게 된다.
 
 아무렇지 않다. 속 시원하다. 생각하는 것도 잠시, 감정은 롤러코스터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이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노력해야 한다고 
 
 극복 가능하다고 믿는다. 
 
 위기(이별)을 극복했던 나만의 방법을 적어보려 한다.
 



 
책을 읽는다 


이별을 했을 때는 제목에 이별. 이 들어간 책을 읽었고, 퇴사 고민이 있을 때는 제목이 퇴사가 들어간 책을 그렇게 읽었었다. 언제까지나 친한 친구를 불러놓고 귀 고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모든 책이 훌륭한 건 아니었지만 심리 전문가의 글도 읽어보고, 개인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마음 정돈에 도움이 됐다.
  책을 읽는 순간과 차분함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서는 꽤 괜찮은 거다. 앞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다짐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마음이 괜찮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덮어버리는 게 책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마음이 힘들 땐 책을 검색해 보는 것 같다. 


글을 쓴다 


요즘은 글쓰기 수업도 듣고 이곳저곳에 내 글을 올리고 있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괴로울 때 마음을 쏟아놓을 곳이 없을 때만 잠깐 행하던 의식 같은 거였다.
 이별 관련 책을 읽었을 때 글을 써보라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보고, 보내지 못할 편지라도 적어보라고 했다. 남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공간 (블로그 비공개 글은 비추천이다. 에러 나면 공개되는 경우를 봤음) 공책에 적어보기도 했고 손이 아프면 에버노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엄청난 욕을 퍼붓기도 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미안한 마음을 담는 글을 쓰기도 했다. 


돈을 쓴다 1 (얼굴을 바꿨다)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그동안 썼던 데이트 비용, 선물 비용이 아깝다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이제 나에게 투자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새로운 위시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혼자 해보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선 좀 더 이뻐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살이 훌쩍 넘어버린 내 모습은 20대 때의 모습 같지 않다. 위축되는 마음도 있지만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쌍꺼풀 수술을 했다. 너무 빨리 결정하고 진행해버려서 몇몇 사람들은 좀 더 생각해보라고 했으나 요즘 쌍수가 성형에 들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후다닥 진행했고, 친구들은 나중에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해줬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쌍수는 진즉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 내 사진을 보고, 이 얼굴도 만나고 좋아해 줬던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전 남자친구에게 애잔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돈을 쓴다 2 (차를 샀다)


 차를 구입한 건 내 의지는 아니었다. 이별 통보를 엄마에게 했을 때. 갑자기 차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자동차, 엄마가 천만 원을 보태주고 내가 나머지 천만 원 정도를 들여 차를 구입해버렸다. 이별한 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이다. 차가 그렇게 빨리 나오는지 몰랐다.
 뭐가 이렇게 급했을지, 딱히 차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운전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오히려 차가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역할을 해줬다. 기존 내 생활 범위에서 벗어난 곳까지 나를 안내해줬다.
 나중에 물었다. 갑자기 이별한 딸에게 차 이야기는 왜 했냐고.
 엄마는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기를 바랐다고 했고, 그 바램은 이루어졌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운전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물론 초반에는 사고 날 뻔도 하고 한 시간도 안 걸릴 퇴근 운전을 2시간 걸려 가고 그랬지만 운전은 하다 보면 느는 것. 
 매일 출퇴근을 자동차로 했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프립 활동을 하는데 타고 다녔다. 굳이 없었어도 됐지만 있으니 좀 더 삶이 풍요로워졌다.
 차의 할부금은 생각보다 오래 갚았고, 유지비에 놀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득이 된 행동이었다.
 
 

 밖으로 뛰쳐나가다

 
 돈을 쓴다와 연관되는 이야기 이긴 하지만 그동안 못해봤던 활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이별로 인해서 시간과 돈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시간과 돈을 나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날씬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플립(1회 성 취미, 운동모임)에서 진행하는 하루짜리 운동 모임을 여러 개 다녀오고, 달리기라든지, 윈드서핑 등 움직이기 싫어하는 내가 그렇게 스포츠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일단 밖에 나가서 사람을 아니 남자를! 만나야 남자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짜리 활동으로는 남자는 생기지 않았다. 그냥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안 해본 것들을 해보는 봄과 여름이었다.
 살다 살다 몇십 명이 모여서 돌아가면서 5분씩인가 이야기하는  집단 소개팅도 다녀왔는데 돌아오면서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가장 어렸던 남녀 한 쌍만 커플이 됐다. 나머지 사람은 들러리 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잠깐 얼굴 보고 이야기해서는 난 호감이란 게 전혀 생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푸켓 송크란 축제를 다녀온 거였는데 운이 없게도 푸켓이 당시 가뭄이어서 송크란 축제는 취소돼서  물놀이는 즐기지 못했고, 그냥 푸켓 여행만 하고 왔는데 막상 여행을 가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대부분이었고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자리 잡았다.
 
 이전부터 막연히 해보고 싶다는 스킨스쿠버를 배웠다. 친구가 해외 바다에서 거대한 바다거북이를 찍은 영상을 보니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당장 시작했는데 국내에서 배운 거라 바다거북이와 산호는 어디 가고, 엄청 차디찬 동해바다에서 눈알 핏줄이 다  터져가면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너무 춥고 힘들게 배우고 그래서인지 그 후로 스킨스쿠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싹 사라졌다.
 돈은 사라졌고(국내에서 따는 게 훨씬 비싸다) 자격증을 얻었다. 
 
 UMF나 힙합 콘서트 같은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연애시절에는 가본 적 없던 곳이었다. 전 남친은 뮤지컬을 좋아했지만 난 뮤지컬이 너무 싫었다. 취향의 차이겠지.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스탠딩도 불사하고 방방 뛰고 음악으로 텅 빈 마음을 채우려 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도 오래가진 않았다. 
 

혼자 여행을 가다


봄여름에 혼자 낯선 환경에 가는 게 익숙해졌고, 혼자 다니는 게 자유롭고 즐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위시리스트에 미니쿠퍼를 운전하는 게 들어있어서 미니쿠퍼 컨버터블을 빌려 제주도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혼자 여행이 떠나고 싶다기보다 정말 미니쿠퍼를 몰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건 삼시 세끼를 혼자 먹어야 한다는 것이고, 모든 일정과 계획은 나에게 달려있다. 이전에 오사카 여행을 혼자 다녀온 적 있어서 그런지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싸울 일도, 맘 상할 일도 없어서 편하지만 반대로 외로울 수도 있는 혼자 여행. 
 
 지금 생각해보면 빌리지 못했을 미니쿠퍼를 비싼 가격에 빌리고 정말 제주도를 사방팔방 운전하며 다녔다. 내가 이렇게 스피드를 좋아하는 여자였나? 관광 이런 거는 최소화하고 정말 그렇게 하루 종일 운전만 했던 것 같다.
 오픈카를 타고 달리는 건 생각보다 시끄럽고 머리가 너무 나풀거리고 눈에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와 불편하다.라는 생각을 했고, 나의 로망이었던 미니쿠퍼(3도어)는 생각보다 트렁크가 너무 작아서 못쓰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혼밥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제주도에서 원 없이 했다. 혼자 오겹살을 구워 먹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혼자 스파게티를 먹고, 저녁이 되면 술집에 들어가 혼자 맥주를 마셨다. 
 혼밥의 레벨을 한층 높이고 돌아왔다. 이런 경험은 퇴사 후 이탈리아 여행에도 적용되어 혼자 잘 먹고 잘 돌아다녔던 것 같다.


점을 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이별 극복 방법을 돌이켜보면 두 가지 키워드를 뽑을 수 있다. 치유 와 일탈이다. 혼자만의 공간 시간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마음을 정리하고, 바깥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고 여행하며 일탈을 했다. 한 가지에만 치중하면 탈이 난다.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는 게 정서에 좋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안되는 건 안되더라. 그래서 결국 점집에 찾아갔다. 긴팔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즈음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뒷북이었다.
 
  점을 종류별로 세 번이나 봤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보는 별자리 점을 보러 갔고 타로를 병행했다. 
 내가 태어난 년월시에 별자리의 모양을 보고 사람의 특징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인데, 이 방식은 생소하지만 일반적인 사주팔자와 유사하다. 남자가 언제 생기냐는 내 물음에 모라고 대답해줬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아쉬움이 있으니 또 다른 점을 봤겠지. 오히려 나에게 타로 같은 걸 배워보라는 말을 해줬다. 내가 그런 쪽에 잘 맞다나?
  두 번째는 동네에 있는 사주보는 집에 갔다. 이번 해가 나에게 큰 변화가 있는 시기고 내 마음도 달라지는 상황이라 이별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해준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쏟고 나왔다. 나는 점집이 아니라. 상담 센터 같은 곳에 갔어야 했을까?
 마지막으로 신점을 보러 갔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안산까지 차를 몰고 달려갔다.
  사진 속 제단의 모습은 울긋불긋 무서웠지만 그만큼 심리상태가 안 좋았고, 괴로웠다. 나에게 신점을 봐주셨던 분은 군인 아들을 둔 아줌마였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였고, 점이라기 보다 심리상담을 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몇 월에 동쪽에 가면 귀인이 온다. 이런 답은 듣지 못했다. 
 "누나야 돈을 모아야 결혼도 하지"
 이런 말을 들었고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야 하니?"
 할아버지가 내가 들어오자마자 하신 소리란다. 
 그렇게 알쏭달쏭할 때가 없는 거다.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해주는 말 같았다. 오히려 점집에서는 회사에서 좀 싹싹하게 사람들 대하고 표정 좀 좋게 하라며 얼굴에 다 쓰여있다는 말만 들었다. 나 자체가 괜찮은 사람이 돼야 남자가 생기지 않겠냐.라고 말하는데 묘하게 설득됐다. 
 
 굳이 열면 안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전 남자친구의 사주를 봤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미 마음이 떠났다. 나에게 정이 떨어졌다.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가을이 되니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왔을 뿐. 
 정떨어졌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엄청나게 울어젖히면서 운전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로는 점을 보지 않았다.
 정말 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도 좀 더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려 노력했고, 일도 열심히 하려 했고, 남자를 만나려고 안달복달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상태가 됐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내 생활을 열심히 하니 나 좋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동호회에 들어가다


프립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는 중, 저녁에 홍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는 프립에 다녀왔다 (진짜 별의별 프립을 다 다녀왔었네) 거기에서 만났던 언니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스윙 동호회를 추천해줬다. 거기 가서 춤을 추면 일단 즐겁고 자기는 거기에서 연하남친을 사귀었었다고 했다 (눈이 반짝) 그래서 당장 동호회를 찾아갔다.
  남녀가 몸이 붙고 손을 잡고 춤을 춘다는 거 자체가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워낙 흥이 많았고, 어렸을 때(대학시절) 클럽이나 이런대서 놀아본 기억이 없어서 이곳은 신세계구나 생각했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간 거였다. 대부분 20-30대 남녀가 비슷한 마음으로 찾아왔으리라..
 
 초반엔 엄청 두리번 거렸지만 딱히 특별한 관계가 될만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의 친구들만 엄청 많아졌다.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취미활동으로 추천하는 곳이긴 하지만 남녀가 함께 춤을 추는지라 그 안에서 커플이 생기지 않는 한 애인이 있는 사람이 다니기엔 무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솔로천국이다.
 알게 모르게 많은 커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하는 곳. 하지만 이곳은 신성한 춤의 영역. 오히려 춤에 빠져서 춤만 추는 사람들도 생겨나고(정말 미친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음악을 즐기는 스윙의 세계에 빠져갔다.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신점을 본 이후) 정말 춤만 그렇게 미친 듯이 추고 다녔는데 그 안에서 남자가 생겼다. 봄여름 가을을 견디고 겨울에 남자가 나타난 거다.


 해피엔딩


그렇게 좐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와 별개로 신나고 즐겁던 스윙댄스는 남자를 만나고 다시는 못 추게 되었다. 슬픈 결말. 
 그렇게 내 목적은 달성이 됐다. 남자는 만나게 됐지만 즐거운 취미활동을 버려야 했다. 지금은 춤을 배웠던 시간보다 안 추는 시간이 훨씬 길어져서 딱히 추고 싶다거나 하진 않지만 내 의지로 그만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여기까지 내가 이별을 극복하려고 발악했던(노력했던) 일대기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또 다른 이유로 내 삶에 변화가 찾아왔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의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연애를 하는 것도 당연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가 현재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이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신나고 자유롭고 좋지만 마음속엔 불안과 방황의 마음이 증폭되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위기를 극복했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위기의 상황은 다르지만 말이다.
 
 과거의 나를 경험을 발판 삼아 지금 이 혼란을 극복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전에도 내 힘든 문제(감정 문제)를 잘 극복해왔고, 앞으로도 잘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가 안 해보던 활동을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물론 점도 봤다. 최근에. 부적 쓰라고만 말하는 사람이어서 무시하기로 했다. 다시금 새로운 계획들을 세워봐야 할 시기다.
 
 회사를 그만둔지 10개월 차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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