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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Oct 19. 2018

김영하 여행자 도쿄

1015  소설가의 여행에세이는?

출간일을 잘 못 봤다. 도쿄가 먼저고 하이델베르크가 나중인지 알았는데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편이 먼저였고 [김영하 여행자 도쿄]가 그다음 해에 나온 책이었다. 순서가 무슨 상관이랴. 나는 계속 김영하의 책을 빌려볼 테니. 

 내가 선정한 몇몇 작가의 모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찾아서 보는 중이다.(일종의 덕질일지도 모르겠다.) 김영하, 정유정, 히가시노 게이고 등등. 하필 선정한 사람들은 책이 많다. 그만큼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들이란 증거가 될 수도 있겠지. 확실한. 사람이라는 느낌?


내가 요즘 즐겁게 보고 있는 알쓸신잡의 영향 때문인지 계속 김영하 작가의 책만 보게 된다. 작가라고 하면 글로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사람. 실제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르지만, 막연하게 섬세한 사람, 조용한 사람.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tv 예능 (물론 교양적 기능을 담았지만)에 나오는 소설가는 종편에 나오는 쇼닥터들 처럼 일종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졌던 것과 달리. 그는 재미있고, 박학다식하고, 영어도 잘하고, 기발하고, 키도 크고 잘생기고 목소리까지 좋았다. (이런..) 뒤늦게 김영하 작가에게 빠져버린 거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소설가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그의 소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소설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게 확실하다. 빨리 읽히고 독특하다. 하지만 뭐랄까 그 어두운 느낌, 파괴적인 느낌이 썩 읽기 좋진 않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등장하는 선정적인 장면들과.. 실제 작가의 성격은 명랑하고? 호기심 많고, 지적인 사람인데 그의 소설은.. 김영하 내면 안에 있는 하이드 박사가 쓰는 글 같달까.


바로 전에 읽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또한 어둡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주제여서 이번엔 좀 가볍게,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를 보기로 했다. 역시! 이 책이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생각과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 에세이를 시작할 때 짧은 소설이 앞에 붙어있다. 국문과 다니는 여성 화자가 등장하고 대학원 시절 짝사랑하던 일본인 학생 마코토와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진짜 짧다. 그런데 숨 가쁘게 읽히고 마지막에 가서는 심쿵. 
아니 그 다음 이야기는요 작가님!!! 그렇게 강렬하게 혹은 웃기게 끝나버린 짧은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도쿄 감성사진들. 그리고 에세이.

2008년에 출간된 여행 에세이. 지금은 너무 흔해서 거론조차 안되는 도쿄. 일반인, 유명인들이 여행 다녀와서 사진에세이 쓰는 게 유행이던 시절에 출간 한 걸까? 책 속엔 글도 있지만 사진이 많다. 우리가 감성사진이라 부를만한 도시의 풍경, 거리 속 사람들, 초점이 나간 모습들.  이 사진을 작가가 직접 찍은 걸까? 궁금해질 무렵. 

작가는 사진기 예찬 글을 하나 보여준다. 

롤라이 35라는 오래되고 작은 필름 카메라의 역사와 특징, 자신이 중고 거래를 어떻게 했는지, 롤라이 35로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필름은 어떻게 교체하는지, 이 카메라가 일본 도쿄와 얼마나 어울리는지에 관해 신나서 적어놓았는데, 내가 알쓸신잡에서 보던 김영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본에서 맥주 이야기가 나올 때는 맥주 만드는 과정 일본 맥주의 역사 등을 신나게 열거하면서 자신이 방문했던 맥주 거품이 훌륭한 수제맥주집 이야기를 한다. 


이번 알쓸신잡 시즌3 4화에서 피렌체를 수없이 와봤다지만. 이번에는 피렌체에서 영국인 무덤을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진짜 괴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도쿄에 가서도 공동묘지를 방문했었다. 그는 100년전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묘사한 책속의 풍경을 보러 갔고, 그곳에 있는 그의 무덤에 가서 인증샷?! 까지 찍고 왔다.

팟캐스트에서 그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냥이로소다]를 읽어주는걸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었다. 100년전에 쓴 소설이라니. 고양이가 화자로 등장하는! 

 김영하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의 묘에 다녀온 이유가 내가 이탈리아 여행갔을때 미켈란젤로 무덤을 찾아간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만나볼 수 없는 죽은 작가를 최대한 가까이서 느끼고 싶을때 하는 행동 말이다. 

"나는 당신이 죽은 뒤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신을 실제로 만나 본 적 없고 당신도 나를 모르겠지만  난 당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당신을 존경해요. 그래서 내가 여기 온거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서 찾아간게 아닐까.



단순히 나는 도쿄에 갔다! 여기서 뭘 먹고 여기서 뭘보고 그랬다. 맛있었다. 너무 좋았다! 는 책은 아니고 도쿄를 주제로한 다양한 작가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직접 여행을 가야지 남이 여행가서 자랑질 늘어놓는걸 못하러보나? 라고 생각하고 볼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여행에세이. 내가 호감있어 하는 작가가 쓰면 다르다. 그냥 난 작가 덕질을 한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만들어낸 소설말고 그냥 당신의 생각이 알고 싶어요. 라는 마음과 일치했던 소설가의 여행에세이였다. 


p184

그러다 도시가 완전히 어두워져 더이상은 정상적인 촬영이 불가능해지면 나는 손에 들고 다니던 롤라이35를 가방에 넣고 내가 사랑하는 생맥주를 마시러 간다. 마치 농부의 삶과 비슷하다. 빛이 나타나면 일을 시작하고 빛이 사라지면 쉰다. 오늘의 노동의 결과는 세월이 지나야 나타난다. 내가 가둔 빛은 어두운 필름 통 안에 갇혀 있으며 그것의 미적 완성도를 지금 여기에서 확인할 수가 없다.

p237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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