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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Mar 17. 2018

봄이 온다

0316 (D-0)

나는 거북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북이를 키운다고 하면 5백원짜리 동전만한 아기거북이를 상상하지만 내 손바닥보다 훨씬 큰 민물 거북이 3마리다. 한 녀석은 원래부터 큰아이를 입양을 했지만 두 아이들은 그래도 아담하니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였는데 3년 사이에 너무 커져버렸다.

멋진 어항은 못해주고 화장실에서 세숫대야와 다이소에서 산 큰 플리스틱 통에 둘로 나눠 키우고 있는데 자주 밖에 나올 수 있게 해준다. 커다란 수조에 못 키우는게 미안하기도 하고. 세숫대야에 있는 아이는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해가 들어오는 창가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내 침대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겨울은 거북이들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다. 물 밖으로 나와 내 침대 밑 벽쪽 끝에 자리잡고 잠을 자는데 내 손이 닿지 않기에 가장 아늑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엄마 침대 밑으론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셋 다 내 방에만 들어오니..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차가워지는 가을부터 서서히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일절 먹지 않는다. 물론 가끔 생고기나 회를 주면 맛은 본다. 맛있는건 주면 먹는다. 그렇게 겨울이면 물밖에 나와 며칠을 잠을 자고 목이 마르면 화장실 근처를 서성이며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화장실 문턱을 올라가려고 쿵쿵 몸으로 소리를 내고, 그러면 내가 목마르냐 하고 따듯한 물에 넣어주고, 또 어느 샌가 나와서 침대 밑에 들어가 자는 생활이 반복 된다.

애초에 거북이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해 신경을 많이 안 써도 되는 동물이긴 하지만 겨울엔 장사로 치면 비수기다. 딱히 내가 해줄 게 없다. 그래서 침대 밑에서 빼꼼이 나와 있는 모습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최근 며칠 사이에 아이들이 달라짐을 느낀다. 아침 7시,8시부터 침대 밑에서 나와서 내 방을 나가려고 방문을 긁어 쿵쿵 소리를 내서 깨우고 물에 넣어주고 밥을 주면 허겁지겁 먹다가 또 금새 나와서 돌아다니고 그러다가 또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화장실 앞에서 쿵쿵 거리고 봄이 왔다. 봄이 온 거다! 이제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엄청 나게 먹겠구나!

봄과 여름의 아이들의 활동량과 음식 섭취량은 겨울에 비하면 몇배가 된다. 봄여름에 덩치가 커지고 살이 찌는 것 같다. 지금은 밥을 안먹고 겨울을 나서 사람으로 치면 쇄골이 음푹 들어가고 마른게 눈에 보이는데 이제 밥 많이 먹고 오동통하게 살이 찌겠지. 덩치도 계속 커졌으면 좋겠다.

중학교 때부터 거북이를 키워서 거북이와 반려동물로 산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래서 나한테는 거북이가 의미 있는 동물이다. 어렸을 때는 나보다 더 커져서 같이 용궁가자고 말하는 어린이였었는데 지금은 같이 용궁가자고 말은 못해도 밥 잘 먹고 계속 계속 커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꽃이 피면, 여성들이 하늘하늘한 얇은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나서면 봄이 왔다. 라고 많이 느낀다. 나는 거북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밥을 신나게 먹을 때 봄을 느끼고 잘 돌아다니고 맛있는거 많이 먹일 생각에 기분이 좋고 설렌다. 자연스럽게 몸으로 계절을 느끼고 행동하는 거북이들을 보면 신기하다. 집안에서만 살고 있어도 계절이 바뀌는걸 기가 막히게 안다.


거북이들이 시작을 알리는 봄이 오고 있다. 작년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들을 이것저것 시작해 보려한다. 을의 입장이 아닌 주인으로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볼 생각이다. 걱정 반 설렘 반 인데 설렘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 올 한해 잘 지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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