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Mar 20. 2018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mee too

0319 (D-3)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MBC가 정상화되고 PD수첩을 다시 챙겨보기 시작했다저 번주 김기덕과 조재현의 성추행, 성폭행 이야기를 보면서 한때 내가 좋아하던 감독과 배우에 대한 실망감과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이번 주 주제도 mee too 캠페인의 연장선으로 성추행 피해자들의 피해 공개 이후의 모습들을 다뤘다
  
피해 사실을 힘겹게 알린다 해도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조직에 해를 가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며 꽃뱀으로 몰고가해자는 두둔하는 모습을 보니 용기 있게 말을 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누가 그녀들을 도와줘야 할까어디서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마음이 착잡하다
제발 처벌만 제대로 해달라고가해자는 명예훼손, 무고죄 이런 걸로 피해자들에게 소송 못 걸게 해달라고! ’
PD수첩을 보고 화가 난 내 마음이 이랬다.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이 난 이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 중


‘나는 오늘 운이 좋아서 살아 남았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그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할까오죽 마음이 아팠으면‘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내 마음은 내가 진짜 운이 좋아서 나에겐 그런 일이 없었던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사회 곳곳대학교방송국교회경찰서 어디에서도 권력형 성범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충격이었다
  
정말 내가 운이 좋았던 걸까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저씨들한테 농담 섞인 발언들에 웃어넘긴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데남자 상사에게 몸매에 대한 발언을 들어서 불쾌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그 당시의 불쾌함은 시간이 지나서인지 기억도 흐릿하다.
  
대학 갗 졸업한 신입시절 공용서버의 팀장님 개인 폴더에 야동이 잔뜩 들어있던 걸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땐 그냥 동료들끼리 보고 웃어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심각한 거 아닌가회사에서 남자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돌려본다는 의미였을까이걸 우연히 보게 될 여성 직원들 생각은 안 해 본 건가? 그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초등학교 저학년 두 아들을 둔 아빠였고사내 행사 때는 부인과 자식들까지 대동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부인과 자식에겐 부끄럽지 않은 아빠일까?
  
아저씨들은 원래 그래 꼰대들이야능글능글한 말들 자주 하는 족속‘이라고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다나한테는 그렇게 심한 일이 없었으니까그냥 소수의 사람들만 겪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최근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다. PD수첩을 다 보고 착잡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켰을 때 실검 1위 이영하또 이 중년 배우에 대한 미투 고발자가 나타났다. 36년 전의 성추행 일이었다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언제부터 가슴속에만 묻어놓고 침묵하고 있었던 거지
  
날마다 새로운 폭로가 나오고 언론에선 신나게 보도하고 바라보는 입장에선 피로가 쌓인다고발은 계속되는데 제대로 된 결말을 아직 하나도 보지 못했다우리나라보다 후진국으로 생각하는 나라들도 성범죄는 법으로 엄격하게 다루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도 좀 더 강력하게 처벌해서 현재의 성범죄자들과 예비 성범죄자들의 뿌리를 뽑아버렸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반대로 여성들은 회사에서 뽑지 않을 거라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여성 혐오라는 말이 많이 대두되고 쓰이는 요즘의 사회 모습을 볼 때 불쾌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성범죄 사건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 나 또한 남성 혐오가 생길 것만 같다이런 사건들 때문에 반대로 피해보는 남성들앞으로 좀 더 말과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고민인 남성들도 많으리라 본다남녀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현재로서는 가해자들의 처벌을 강력하고 확실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지만 근본적으로 남녀가 어떻게 함께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겠지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