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Aug 01. 2019

진이, 지니 따스했고 다정했고 뭉클했다

정유정소설

정유정 작가를 알게 된 건 3년 전 나온 소설 [종의 기원]이었다.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 권의 책 중 한 권인데 충격이 컸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소설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정말 사이코 패스가 적은 것 같은 글. 이런 글이 여성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게 놀라웠고 다른 일에 종사하던 평범한 주부,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너무 멋있게 다가왔다. 일단 그녀의 이전 책을 모조리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7년의 밤], [28] 역시 재미있게 읽었고 재미있다기보다 임팩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정유정 작가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 불리고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말로는 정유정 작가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만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니까. 남들보다 기똥차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잘 쓰는 게 맞긴 하지만.

이번에 나온 소설 진이, 지니의 책표지는 밝은 연두색에 눈이 그려져있고 눈 안쪽에는 한들거리는 무성한 풀이 보인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저건 보노보 지니의 눈을 표현한 거다. 그리고 책날개에는 [따스하고 다정하고 뭉클했다.]라고 쓰여있다. 왜 뭉클했다.라고 쓰여있는지, 그냥 마케팅 팀의 홍보 카피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하철 어느 역에서 소설의 마지막을 읽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다 지하철역 내려서 또 한 번 눈물을 훔치고 친구를 만나서도 진이, 지니를 다 읽었다며 또 눈물을 훔쳤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슬프기도 하고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 있다.

나 자신을 돌이켜봤다 해야 할까.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미안함 죄책감의 감정이 밀려왔다. 정말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 인간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게 아닌지. 이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직접 그 동물이 돼보지 않고는 알기 힘든 동물의 마음을 책에서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키우고 있는 거북이 세 자매도 떠올랐고 밥을 주고 있는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우리에 갇혀있는 보노보는 안쓰러운 게 맞다. 그런데 집안에서만 사는 거세당한 고양이들은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인간만 행복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슬프기도 하고 책 속의 진이를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고 여운이 꽤 길었던 소설이다.

정유정 작가가 소설가 이전에는 응급실 간호사를 해서 남들보다 죽음을 많이 본 경험이 있고, 어머니가 투병을 하시다 3일간 혼수상태로 계셨다 돌아가신 일이 이 소설의 시작이기도 해서 죽음을 대하는 성숙한 인간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사는 삶. 그것도 정말 딱 맞게 태초의 지구, 인간과 매우 흡사한 보노보를 등장시켜 이 두 가지를 잘 버무려 놓은 한편의 모험소설 같다.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인간 진이가 보노보 지니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건 판타지라고 한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판타지라는 이 생경한 단어가 무색하게 소설을 읽고 있으면 전혀 이건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몰입감 최고다.

소설을 쓰기 전에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디테일이 강한 정유정 작가답게 보노보를 알기 위해 직접 일본에도 가고 야생에 가까운 보노보를 보기 위해 베를린 동물원까지 다녀온 작가님의 투지!에 박수를 보낸다.

말 그대로 따스하고 다정하지만 정유적 작가의 특징 뒤가 궁금해 미치겠어. 주인공 어떻게 해! 이런 조금증이 들게 만드는 스토리는 여전했고 가상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자연 풍경이 많이 나온다는 점, 또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이 [28]이 연상됐다. 혹시나 했더니 [28]에 등장한 소방관이 [진이, 지니]에서도 등장한다. 그 일이 지났어도 잘 지내고 있다.라는 걸 알려주는 거라나. 이런 깨알 같은.

실제 남편분이 소방공무원이셔서 그런가 소설에 소방관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28]에서는 간호사도 등장하지. 완전히 다른 가상세계 같지만 작가의 실제 삶이 녹아있는 게 또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을 좋아하면 그 소설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인 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진이, 지니]를 성장 3부작으로 생각한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봤다. 각각 책 속 주인공 나이가 15세, 25세, 진이, 지니에 와서 35살이 된다. 뭔가 모험하는 느낌, 주인공이 모험을 헤치고 나아가는 성장 스토리? 크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작가가 말하는 성장 3부작 중 [내 심장을 쏴라]를 다음 책으로 읽어야겠다.



정유정 작가님이 유튜브에! 처음 나오시는 거라고 한다. 요즘은 정말 특정 주제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영향이 강력하다는 걸 느껴보면서. 40분여간 수다 떨듯 즐겁게 이야기하는 정유정 작가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_+ 진이, 지니를 쓰기 전에 준비하고 계셨다는 바다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도 기대해 봐도 되겠지. 아 참! 자랑하나 해야겠다. 18일에 북바이북에서 진행하는 정유정 작가님과의 만남! 시간을 신청해서 작가님을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설렐 수가 없다.ㅠ



매거진의 이전글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