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때 어디있었어?
엄마와 영화[1987]을 보고 왔다. 엄마랑 나의 유일한 데이트는 영화관같이 가기다. 영화를 본 후엔 꼭 초밥을 먹는다. 엄마가 나랑 함께 볼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전국적으로 히트를 친 그런 영화다. 그리고 하정우나, 송강호, 이병헌, 황정민 같은 실력파 배우가 주인공인 경우 또한 포함된다.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긴장되는 영화인데 가뭄의 단비같이 강동원이 나왔을 때 사르르 녹아내렸다. 영화관 안의 많은 여성들이 하앍. 했다. 나는 강동원이 1987애 나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포스터에도 크레딧에도 나오지 않으니!! 영화 끝나고 나서 든 생각은 주인공은 여진구가 아니라 강동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지만 말이다
엄마는 그때 어디 있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태리가 바라본 장면. 옛날 시청 광장에 모여서 소리치는 사람들, 흡사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그리고 슬프지만 가슴이 뭉클하는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나는 84년생. 저 때 저 상황을 알고 기억하기엔 너무 어리다. 최초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88년도 올림픽 때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노래라든지 엄마가 사준 호돌이 인형이라던지. 그 정도뿐인데 나는 그렇다 치고 엄마는 저 때 뭐 하고 있었을까? 가 궁금해졌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엄마는 저 때 저 풍경을 봤냐고 tv에 나왔냐고, 어디 있었냐고 물었더니 집에 있었단다. 데모를 많이 하니 집에 있었다고. 3살 된 꼬맹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였을 엄마는 저곳에 갈 수도 갈 이유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나 또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마음으로는 간절히 응원했지만 선뜻 사람들 모이는 곳에 나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역사에 남을 현장이라고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왔는데 말이다.
나중에 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내 딸이 엄마는 저 때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모라 해야 하지.. 한창 춤바람 나서 춤추러 다녔어. 난 원래 사람들 많은 곳을 싫어해. 날도 추웠고 길에 있으면 화장실은 또 어떻게 해. 화장실 불편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라고 해야 할까.
최루탄의 추억?!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한 최루탄 그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고 이한열 열사. 그 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강동원. 너무 인상적이다. 이것도 추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에는 전혀 맡아볼 기회가 없는 그 최루탄.(요즘엔 물 대포가 유행이라지) 나는 그 최루탄에 대한 기억이 있다. 유치원 때 한성대학교 정문 앞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가 아마도 1989년도였을 거다. 혹은 1990년도. 그 당시 한성대학교 대학생들이 집회를 엄청 했다. 그때는 데모라고 불렀지만. 정문 앞에서 최루탄이 터져서 집을 나오던 엄마랑 나는 황급히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침을 엄청 하고 눈이 따갑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무서웠다. 대학생 언니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행진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 못했고, 데모는 나쁜 거라고만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천에 격하게 적어놓은 문구들도 무섭고, 다들 너무 격정적이고 분노에 차있는 그런 분위기를 어린이가 봤을 때 좋은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겠지. 게다가 최루탄의 고통까지 맞보았으니까.
엄마의 첫 최루탄
엄마가 갑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나의 첫 최루탄이 유치원 때였다면 엄마의 첫 최루탄은 중학교 시절이라고 했다. 엄마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무렵 첫 뺑뺑이로 지금 성북구 집과는 거리가 매우 먼 도봉구의 한 여중에 배정을 받았고 학창시절 내내 걸어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도봉구도 예전에는 성북구였다는 놀라운 이야기까지 들었다! 여하튼 집이 많이 멀기에 중학생 시절 아무 차에나 손을 들고 집 근처까지 태워달라고 했더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으니 그때는 순수했다나. 지금 같으면 어림없을 히치하이킹을 70년대 여중생들은 했다. 그러다가 얻어 탄 차는 엄마 집 근처 한성대 쪽으로 가지 않았고 고대 쪽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고대 앞에서 세워달라고 하고 집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그 당시 고대 앞에서도 집회가 한창이었고 엄마는 그때 최루탄을 처음 경험했다고 한다. 아니 엄마 학창시절에도 데모를 했다고?! 그때가 몇 년도인데! 74년도 정도로 추정한다. 박정희 독재 시절이다. 이렇게 기나긴 역사를 지닌 민주주의라니. 적극적인 참여자는 아니었지만 나도 엄마도 역사의 현장들을 체험했구나.
엄마랑 박지만은 동갑이래
중고등학교의 배정이 학력고사에서 뺑뺑이(다른 말로는 모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로 넘어가는 첫 타자가 엄마 나이대라고 했다. 58년생 그러면서 갑자기 박지만 씨 이야기를 하는데
"박지만이 나랑 동갑이야. 박지만이 공부를 못해서 뺑뺑이로 바꾼거야"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었냐고 그러니 엄마는 그냥 그렇다.라고만 말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박지만의 첫째 누나는 그렇게 욕하고 싫어하면서 "박지만은 그래도 사람들이 안쓰럽게 생각했다"라고 마약을 하고 어쩌고 해도 어린 나이에 부모다 잃고 다들 짠하게 생각해서 안 미워했다고. 모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지금은 좀 나이 들어 그렇지 젊었을 때는 괜찮게 생겼었다고. 말을 해주는데 내 머릿속 박지만 씨는 그냥 아저씨. 쌍까풀 있고 좀 능글거려 보이는 퉁퉁한 안경 쓴 아저씨일 뿐인데 엄청 궁금해졌다. 예전 모습이.
그렇게 호기심에 구글에서 찾은 박남매들의 모습이다. 박지만 씨는 워낙 어릴 때 사진 밖에 없어서 좀 큰 모습은 이거 하나 찾았다. 엄마 말에 급 수긍을 했다. 맞네 훈남이네 예전엔 잘생겼잖아! 생각해보면 엄마가 어린 시절 봤던 저 세 남매는 영국 왕실의 왕자 공주와 같은 존재였겠다는 생각해본다. 관심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 또래 친구들끼리 "박지만이 잘생겼더라." 하면서 꺄르르 하는 상황들. 엄마가 젊었을 때 그래도 괜찮았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어느 시대건 소녀들은 다 똑같았던 것
영화 한편 본 것뿐인데 엄마의 옛날이야기까지 듣는 시간을 보냈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에 관한 이야기 그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내가 저 당시 대학생이라면 어땠을까. 정말 강동원 같은 잘생긴 선배가 같이 하자고 했어도 나 또한 김태리 같은 마음과 생각이었을 것 같다. 무섭고 두렵고, 이렇게 한다고 모가 달라지냐 했을 것 같다. 용기 있는 행동을 했던 그들에게 뒤늦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택시운전사] [변호인] [보통 사람] [1987] 같은 영화를 통해서 교과서에서도 배우지 못한 진짜 역사를 배운다. 정말 영화의 영향력과 존재의 이유를 여실히 느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