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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ul 25. 2015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

2년 만에 쓴 편지

2014년 12월, 서울에서 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 나는 꽤 지쳐있었고 자의 반 타의 반, 준비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잠시 쉬기로 했다. 당시에 친구들이 안부를 물으면 인생에 방학이 찾아온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여하튼 굉장히 가라앉은 시기였음에도 텅텅 비어 버린 시간에 내 주변을 살피게 됐다. 한날은 오랜만에 교보문고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편지지를 샀다. 취업 준비로 꽤 힘들어하는 친구가 생각나서. 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오랜만이라는 표현이 정말 오랜만인 게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오랜만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사각사각 편지지에 글을 써내려 가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얼마 만에 쓰는 편지인 거야?'

기억나질 않는다. 언제 쓴 편지가 마지막 편지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쓴 기억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2년쯤 되었나.

어?

.

.

.

2년?


어릴 때부터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짝꿍에게 쓴 편지를 집 주소를 물어가며 우표까지 사다 붙여 편지를 부치곤 했다. 학창시절엔 편지로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일보다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아날로그 감성을 즐겼나 싶다. 대학 때도 편지든 쪽지든 종이에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이 잦았다. 온종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듯 쓰던 편지다. 너무 바빠서 잊고 있다가 '맞다!' 하고(말도 안 되는 상상이겠지만) 한 달 만에 처음 카카오톡을 켰다고 생각해보자. 가히 문화충격이다. 2년 만에 쓴 편지는 그렇게 나에게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었다.


2년 만에 쓴 편지치곤 폭풍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그동안 편지를 못 써서 한이 맺혔나 싶을 정도로 와다다다 써버렸다. 편지를 다 쓰고 집으로 가는 길에 (때마침 해가 진 뒤라 감상에 젖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두둥실. 요즘 세대를 불문하고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시절인데 내 친구처럼 조금은 힘든 아니면 그냥 편지가 좋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집에 와서 글을 썼다. 정말 충동적으로 아무런 계획도, 방향도 설정하지 않고 시작했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잠깐 주저했을 뿐.


꿈이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꿈. 자주 입 밖으로 꺼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전했을 때 '대통령이 될 거야'처럼 소중하고 특별한 꿈으로 여겨 주지 않을까 봐. 내 삶의 방향은 세상에 따뜻한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많은 아이를 입양할 수도,  스티브 잡스처럼 아이디어와 기술로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 수도, 빌 게이츠처럼 넘쳐 나는 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후원할 수도 없다.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다. 지금은 그 수단으로 '편지'를 선택했다. 큰 비용이 필요하지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니. 굉장히 멋지다. 스스로 생각해놓고 반했다.


이 무렵 넘쳐 나는 시간에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서 읽었는데 (읽은 건지 들은 건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부정확한 정보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꼭 무언갈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압박으로 뭐든 해야만 한단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혹은 나의 성향으로 인하여 나는 그렇다. 할 일이 없다는 것. 불안하다. 무섭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유를 누린다는 것이 두렵다. 나의 불안이 편지 쓰는 일을 촉발한 크나큰 이유는 아니지만, 그 순간 한 몫 했으리라.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왔다
2015년 2월 21일부터 시작한 손편지 프로젝트입니다. 지로용지, 광고지만 들어있는 우편함에 날 위한 편지 한 통이 있다면 그날만큼은 따뜻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낭만과 여유 그리고 위로가 필요하신 분
그냥 손편지가 받고 싶은 분
일상을 나누고 싶은 분
누구에게나 손편지 써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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