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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30. 2021

[2탄] 서른,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 오다.

부제 - 어서 와, 스위트룸은 처음이지?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컨시어지 앞에 섰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캐리어는 이미 직원 손에 있었다. 때로는 손이 거칠어질 정도로 집안일도 많이 하고 손을 가만히 못 두는 편인데, 자유로운 두 손이 어색했지만 좋았다. 또래처럼 보이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직원분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셨다. 다시 한 번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연스럽게..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500번 넘게 생각하고 방금 입밖에 냈던 그 질문을 다시 했다.


    “스위트룸 업그레이드 할 수 있나요?”


“네, 고객님. 가능하세요.”

    아, 가능. 이 단어가 이렇게 달콤하고, 이렇게 살벌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한다. 다시 찾아온 선택의 순간. 방문 전 인터넷으로 2박의 숙박을 예약했다. 스위트룸으로 1박만 할까? 친구들과 고오급 레스토랑에서 파인다이닝을 즐기고, 작고 소박한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던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고 쓸쓸했던 그 기분. 스위트룸에서 1박 하고 일반룸으로 옮기면 그 때의 그 기분일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혀는 다시 한 번 주워담을 수 없는 문장을 말하고 있었다.


“2박 다 업그레이드 해주세요.”

    20대에는 야놀*, 데일리호*, 호텔스닷* 그것도 모자라 그 모든 사이트들을 비교해주는 포털사이트 검색까지. 같은 호텔, 같은 룸, 같은 날짜여도 금액이 다 달랐기에 어떻게든 최저가를 찾아서 예약했었다. 그리곤 항상 룸 선택 페이지 맨 밑에 있던 스위트룸을 보며 생각했다. ‘호텔 스위트룸은 누가 가는걸까?’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내가 그 스위트룸에 가게 되다니. 물론 하얀 바탕에 까만 글씨가 들어선 영수증에선 내눈에만 보이는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듯 했다.


    매니지먼트 일을 하다보니, 언제 어디서 이슈가 터질지 몰랐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세상 평화롭게 흘러갔고, 오늘은 괜찮겠지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꼬옥 이슈가 생겼던 지난 날들. 딱 이틀. 이 이틀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쉬리라. 누리리라. 셀프 호강을 선사하겠노라!


    텐션이 무척 잘 맞았던 아리따운 직원분과 신나게 수다를 떨며 스위트룸 배정이 시작되었다. 꼭대기층인 20층을 갈 것인지, 푸르른 남산뷰를 볼것인지 서울의 자랑 한강뷰를 볼것인지. 직사각형 일반 욕조가 좋은지, 타원형 오발 욕조가 좋은지. 취향을 고려한 자세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고, 머릿속으로 남산, 한강, 욕조 마구마구 아는대로 상상하며 대답을 했다. 스위트룸에는 뷔페 식사가 포함된 라운지가 제공된다고 했다. 1박은 나혼자, 1박은 친언니와 함께 보낼 거라는 tmi에  첫날 가격을 1인 기준으로 내려주셨다. 추가 요금과 보증금을 더해서 내가 결제할 금액은 90만원. (방문 전에 이미 예약을 마친 금액은 제외하고다…)

    핑크빛 그 친구를 꺼낼 때가 왔다.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는 친구. 멀리 하고 싶지만 너무나 가까운 그 이름, 신. 용. 카. 드.

    아뿔싸. 신용카드 한도가 가득 찼다. 업무비용과 엄마의 가을 여행비를 예약해준 것이 한데 섞여 이미 누적금액이 꽉 차게 올라가있었다. 카드사는 일을 ‘너무’ 잘한다. 한도초과로 승인이 거절되자마자 빛의 속도로 전화가 왔다. 자동 음성 안내에 따라서 숫자를 두어번 띡띡 누르자 한도는 기존보다 1.6배 껑충 올라갔다.

보증금 결제가 완료되고, 실 결제는 체크아웃 하는 날 이루어진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온 마음과 몸으로, 열과 성을 다해, ‘스 위 트 룸’을 즐길 것!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자지마! 밤새 즐겨! 자는 시간도 아까워!”

    스위트룸에는 2박 내내 이용할 수 있는 넉넉한 수영장 쿠폰, 라운지 조식, 그리고 각종 위스키, 리큐르와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샴페인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이브닝 칵테일 뷔페도 포함이었다. 내내 친절했던 직원분에게 어떻게든 보상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소정의 팁을 드렸다. 지갑에 고이 모셔놓았던 금빛 신사임당님.. 굿바이-. 마지막까지 완벽히 에스코트 받았다. 손수 컨시어지에서 직접 나오셔서 캐리어를 끌고 객실 안내까지 해주셨다. 구석 구석 룸 안내를 받아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두근두근. 스위트룸 객실을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로 끝도 없이 펼쳐진 한강뷰에 입이 쩌억 벌어졌다. 전에는 들어서는 순간 룸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침대, 아주 작은 협탁, 1인용 소파, 그리고 화장실. 그게 다였는데.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반짝 반짝 빛이 나는 대리석과 ‘나 비싸요’라고 써져있는듯한 짙은 원목의 조화가 아름다운 홈바, 10명이 앉아도 넉넉할 거 같은 ㄱ자형 푹신한 소파, 우리집 거실 창문 크기의 커다란 티비, 그 뒤로 척 척 걸어가면 세 명이 뒹굴어도 행복해질 거 같은 왕왕 킹 사이즈 침대. 침대랑 마주보고 있는 커어다란 티비 하나 더. 그리고 웬만한 안방 크기의 세상 고급진 베이지톤 골드톤의 대리석 화장실까지. 화장실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럭셔리했다. 샤워 부스, 변기 부스, 오발 욕조까지. 넓고 또 넓었다. 그리고 샤워부스에서도 욕조에서도 모두 한강 조망이 가능했다.


이래서 스위트룸이구나.

    스윗하다못해 달디 단 맛에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의 기분을 느끼며, 창가에 서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전망을 한참이고 보았다. 에메랄드빛 수영장과 잘 가꾼 나무들의 녹음이 아룸다운건 물론이고, 온 서울이 마치 내 발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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