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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30. 2021

[1탄] 서른,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 오다.

부제 -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Live and let live.”

“누구나 남들이 뭐라든 자기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종종 입버릇처럼 “우리 이기적으로 살자.”라고 말하곤 했다.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나’부터 챙기자는 거다. 모든 걸 어깨에 짊어지고 개선장군 같은 삶을 산 엄마, 그런 엄마를 있는 힘껏 보좌한 K-장녀 대표주자 친언니. 이 둘 사이에서 샌드위치 속재료 사이사이에 희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케찹이나 마요네즈 같은 K-막내가 찾은 인생의 묘수였다. 부모님과 자식이 항상 0순위였던 엄마와 그런 엄마가 0순위였던 언니. 그 속에서 나만이 ‘나는 날 0순위에 둘 거야! 그럴 거야!’라고 소심하게 속으로만 외치곤 했다.


    나이는 어렸고 영혼은 무르디 물렀던 그 시절을 지나, 서른이 되었다.


    MZ 세대의 흔한 일원으로써, 아등바등 경쟁 사회에서 특히 직업적으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길고 긴 방황 끝에 이제야 조금씩 조금씩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종종 이 평화가 유리컵처럼 산산조각 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신용카드 결제일.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어린 나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가족에게 지출한 흔적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낳아주고 길러준 가족이라는 것을.. 인생에서 크고 작은 위기들이 깜빡이 없이 들이닥칠 때면 항상 번개같이 나타나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빛이 안 보이는 깜깜한 구덩이에 빠져있을 때 있는 힘껏 지상으로 건져 올려준 것은 바로, 엄마와 언니였다.


    우리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유니콘이다. 유니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굉장히 이상적인 존재. 착하고 / 심성이 고우며 / 어딜 가나 인기가 많고 / 친구도 많고 / 공부도 잘하며 / 선생님들의 총애를 듬뿍 받고 / 반장이란 반장은 모두 도맡아 하는. 그런 언니에게도 꽤 재미진 구석이 있다. 그건 바로 ‘부르주아’ 그 자체라는 것. 좋은 것, 비싼 것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자신은 그걸 누리기 위해 열심히 산다고 말할 정도…. 나의 혼캉스도 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자매라면 알 것이다. 온전히 둘이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세상 특별한지. 오랜만에 자매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2박 3일 서울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근데 갑자기! 언니가 첫날은 나 혼자 보내라는 것이 아닌가! 혼캉스 강추라며, 자신은 혼자 호텔 갔을 때 가장 큰 힐링을 얻는다고 말하며 거의 반강제로 나를 혼자 가게 했다.


    사실 나는 호텔을 좋아는 하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호텔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평소 호텔을 적지 않게 가봤으므로 '혼자 호텔'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음을 미리 밝힌다. 그러나 2인 공동체로 살고 있기 때문에, 혼자 오롯이 보내는 1박 2일은 굉장히 생소했다. 싱글 캐리어에 온갖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두근두근. 왠지 혼자 스위트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쉬는 날에도 매일 일을 붙잡고 살았다. '이 정도 셀프 보상은 해줘도 되지 않을까?' 이미 답을 다 내린 답정너가 로비 라운지에 도착하였다. 일반룸은 체크인 시간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직원분에게 흥분한 영혼을 최대한 꾹꾹 눌러가며 침착한 척, 머릿속에서 오백 번도 더 생각한 그 멘트를 꺼냈다.


“스위트룸 객실로 업그레이드 가능할까요?”

    그러자 그 직원이 나를 부드러운 파도처럼 바로 컨시어지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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