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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20. 2021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

코시국 시대의 슬픔

    정부가 거리두기 연장안을 발표했다. 다음 주부터 식당, 카페 등 오후 9시까지만 영업한단다.


“아 - …”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코시국이 심화되기 이전에 나는 밤 9시에 퇴근하는 영어강사였다. 나의 베프 또한 같은 업종이어서 늦은 퇴근은 마찬가지. 우리 둘에게 이 코시국의 영업시간 제한은 퇴근 후의 삶을 통째로 바꿀 만큼 큰 일이었다.


“술을 못 먹으면 죽나요?”


    라고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둘 다 주당도 아니요, 술보다도 안주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 제한이 슬픈 이유는? 다들 아실 거라고 믿는다. 항상 반복되는 일, 집, 일, 집… 고단한 몸을 이끌고 금요일, 주말이면 거리가 북적이는 이유는 다들 매한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보는 먹음직스러운 안주와 한 주의 고생을 샤라락 씻겨가 줄 술 한 잔. 의례처럼 매주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솔찬히 헛헛한 게 사실이다.


먹태와 민물새우깡은 술을 술술 부른다.


    우리 둘에겐 새벽 늦게까지 하는 술집 리스트가 있었다. 야근을 하고 밤 12시에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불 꺼진 거리에서 유일하게 반짝, 불 켜진 가게를 찾아 들어간다. 좋아하는 메뉴는 ‘오늘의 메뉴’나 ‘주방장 시그니처’ 메뉴. 술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고른다. 갈증이 바짝바짝 날만큼 스트레스받은 날이라면 쉬이원한 생맥주를, 홀짝홀짝 맛있게 들이켜면서 살짝 얼큰하게 취하고 싶은 날에는 하이볼이나 위스키 온 더 락,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어, 이번 주 스트레스 대박이였어!’ 싶은 날에는 쏘오맥을.


우리밖에 없는 늦은 새벽, 가게 음악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그렇게 열띤 수다와 함께 맛있는 안주 다섯 입에 술 한 모금. 구겨진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배시시 웃음만 가득해진다. 취기가 살짝 오른 채, 가게 마감에 열중이신 사장님을 뒤로하고. 불 꺼진 거리를 휘적휘적 걸으면서 집에 들어오는 일. 언제 그랬냐는 듯 고생이 씻겨가고, 이 맛에 돈 번다고 술냄새 풀풀 풍겨가면서 집에 와 깨끗이 싹 씻고 침대에 벌러덩 눕는 일.


    이런 일들이 기약 없이 쭈우욱 미뤄지고 있는데, 모든 이가 건강하고 무탈할 수 있다면야. 주구장창 밀린 들 어떠하리.


    금요일 저녁인 오늘, 나는 오늘도 조촐한 ‘집술’ 술상을 준비한다.


간술, 홈술, 집술!


    모두의 건강을 위해,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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