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Aug 03. 2021

길이길이 기억될 30번째 생일날(마지막 편)

3편 - 할 수 있드아악!

3편 - 할 수 있드아악!


    싱글벙글. 그날의 나를 누군가 보았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 싱글벙글 시점의 풍경.

    서른 살 생일 당일이었고, 금요일이었고, 비가 온다던 가평은 비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예쁜 구름이 수놓아진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신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생일 선택지로 선택한 ‘잣숲’마저 너무 푸르르고 아름다웠다. 자, 이제는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내가 등반해본 산은 … 곰곰이 생각해봐야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산을 안 가봤다는 뜻이다. 목동의 봉제산(지금 찾아보니 높이 105m이다.), 파주의 심학산(높이 192m)… 내가 생각하는 산은 죽을 거 같을 때 정자가 나오고, ‘아 진짜 더 못 가겠다’ 할 때 벤치가 나오고, ‘아 정상 안 찍고 내려가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 정상의 정자가 나오는. 죽을 거 같지만 또 쉴 곳이 중간중간 나와주는 그런 밀당 쩌는 느낌. 하지만 축령산은 조금 달랐다. 아니, 조금 많이 달랐다.


    ‘이 길이 맞나? 저 길이 맞나?’ 알쏭달쏭하게 느껴질 만큼 사람도 없고 길도 없었다. 누가 한 여름에 산에 오르겠냐만은, 그래도 요즘 코세글자 시국이어서 등산이 꽤나 핫하다고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울창한 수풀 사이에서도 벌레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벌레들도 너무 높고 험해서 없었던 거 아닐까 싶다.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이 맞는지~’ 노래가 흥얼거려질 때면 ‘정상 몇쩜몇미터’라고 쓰인 무심한 표지판이 있었다. 아니 근데 나는 분명 평소에도 6km는 거뜬히 걸었는데? 정상 6.9km가 이렇게 힘들 일인가?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라고 되뇌며 걸었다.


    생수 500ml와 얼음물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인내심이 바닥에 칠 때쯤,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나무 계단이 나타나면! 저 계단을 넘으면! 내가 생각하는 정상! 정상이 나오고 정자도 나올 거야! 마구 신이 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 끝이 없었다. 그 계단을 넘으니, 아뿔싸. 밧줄이 달린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관악산에서인가? 본 것도 같아! 저런 로프를 잡고 간신히 바위 위로 올라가면 정상이 나올 거야! 그렇게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바위를 올라갔다. 바위를 올라가니 또 여태 봐왔던 험한 산길이 나왔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나 정상 올라가고 만다 라고 온갖 오기를 부려가며, 나무 기둥을 잡아가며, 바위를 손으로 밀어내며 흡사 짐승처럼 죽을똥 살똥 올라갔다.


    평지조차 별로 없었던 그곳에서, 평지를 만나서 거의 쓰러지듯 앉아서 쉬었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올게.” 친구를 보내고 앉아있는데, 아무도 없는 산속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오는 건지 울음이 나오는 건지, 서른 살 생일은 절대 못 잊겠다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혼자 올라오는 건 위험할 거 같으니 자신이 다시 내려오겠다고. 그렇게 친구가 내려왔고 우리 둘은 정상을 향해 또, 또, 또… 올라가기 시작했다. 로프 달린 바위들을 몇 개를 이 악물고 “할 수 있다!”(정확히는 할 수 있드악! 아악!)이라고 소리치며 올랐는지 모른다. 드디어,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엔 정자도 없고, 커다란 돌탑만 하나 띡 세워져 있었다. 그리곤 눈을 돌렸다. 세상에. 높이 890m의 축령산은 정말로 북한산보다 높은 산이 맞았다. 주변의 모든 산들이 나의 발아래에 있었다. 숲에서도 끝없는 초록을 볼 수 있지만, 광활한 산세가 내 발아래 펼쳐져있는 것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황홀했다. 아름다웠다. 그리곤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평소에 평지만 걷다가 내가 이렇게 높은 산을 점령했다니. 등반했다니. 정복했다니! 그 순간만큼은 마치 엄홍길 대장님 저리 가라의 뿌듯한 마음이 가득 찼다.


가장 높은 축령산에서 실컷 "야호!"를 외쳤다.

    

    서른을 맞이하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한데 뒤엉켜 ‘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스스로 허들이라고 느끼던 차에 해발 890m의 축령산을 오른 것은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다. 너도 할 수 있다고, 서른이란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마치 산을 오르듯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목 끝까지 차 올라도 심호흡 크게 하고 또 걸어가면 된다고, 올라가면 된다고. 온 자연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발 아래 펼쳐진 굽이 굽이 길다랗고 아름답던 푸른 산의 물결


    하산하고 며칠간은 몸살로 앓았지만, 몸은 아플지라도 마음은 외려 건강해졌다. 이 이야기를 글로 꼭 꼭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처럼 서른을 맞이해서 지쳐있거든, 축령산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내가 느낀 이 기분을 당신도 느꼈으면 좋겠다. “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이길이 기억될 30번째 생일날(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