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Jul 24. 2021

길이길이 기억될 30번째 생일날(2편)

2편 - 저는 몰랐어요...

2편 - 저는 몰랐어요...


    그렇게 무더운 여름의 한밤중에 나의 생일이 되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이 된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 종이 냄새가 폴폴 나는 새해 달력에서 나의 생일이 무슨 요일인지 먼저 찾아보곤 한다. 연초에는 분명 생일이 금요일이라 기뻤는데 가평 잣 숲을 간다고 결정하고 나니, 슬퍼졌다. 금요일부터 주말이니.. 나 같은 사람들이 모두 부릉부릉 도로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잣숲 오픈런을 하기로 했다.


샤넬 오픈런

    오픈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가기로 했다. 금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는 생각을 해보니 평소 기상 시간보다 2시간이나 빠르기에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정신이 아득했다. '얼른 누워서 자야겠다!' 하고는 눕자마자 바로 폰을 보았다.


    '아, 날씨!’


    등산인만큼 날씨가 중요했다. 등산을 안 가니까 날씨를 살펴봐야 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기상예보를 보니 오. 엠. 쥐… 구름, 구름, 구름… 시간대별로 보이는 가평의 날씨는 온통 구름이었다. 물론 구름 밑에 ‘비가 올 확률’을 보여주는 숫자는 애석하게도 60%, 70%였다. 과반수가 넘는 확률이라는 것은 빗속에서 산행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음속에서는 두 친구가 옥신각신 싸우고 시작했다.


    '가지 말자~ 언제부터 산을 갔다고 그래~ 생일인데~ 실컷 놀고 늦잠 자자~’


    '무슨 소리야~ 쟤 말 듣지 마~ 좋은 공기 마시고 싶다며~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좋은 공기 마시면 좋을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나중에 내가 이 30번째 생일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또 도시 속에서 또 똑같은 카페를 가고 또 똑같은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아니면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초록색 숲에서 비가 오건 해가 뜨건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보낼지.

    지금 생각해보니 답정너 그 자체였다.


    '그래, 가자!’


    비가 온다던 가평의 오전은 거짓말처럼 환상의 날씨를 자랑했다. 푸르른 하늘에 그림같이 몽글몽글 피어오른 구름들. 뭉게구름, 휘핑크림 같은 구름, 온갖 아름다운 구름이 모두 섞인 하늘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마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듯 날씨가 좋으니 가평 잣 숲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신이 나고 흥분이 되었다.


저절로 신이 났던 가평 가는 길, 파란 하늘과 무성한 초록빛!

    가평 잣 숲에 도착했다. 입구에 가서 입장권을 샀다. 친절하신 직원분께서 현재 공사 중이니 화장실 옆 길로 가시라,라고 말해주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호수’. 인터넷에서 본 사진 속 산에 둘러 쌓인 호수의 사진이 무척 예뻤다. 조금의 등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으므로 등산복과 트레킹화를 갖춰서 시작했다. 가평 잣 숲에는 ‘무장애길’이라고 높디높은 잣나무 숲 사이에 아름다운 나무데크 길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나무데크 길을 걷는데, 꼭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웠다. 나무는 매우 높았으며 그 나무에서 나풀나풀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꼭 CG를 입힌 영화 속처럼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데크 길을 지나서 하늘 호수에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푸르른 여름날의 하늘 호수


    서울은 정말 더운 여름인데, 가평 잣 숲은 시원했다. 모든 게 다 좋았다. 너무 좋았기에 벌써 하산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표지판에 ‘정상 6.9km’가 보였다. 평소에 운동 겸 산책으로 6km는 거뜬히 걸었으므로, ‘오! 금방 도착하겠네!’ 하고 표지판 방향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몰라서 무식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그 산이 북한산(830m) 보다 높은 축령산(890m)인 줄 알았다면. 네이버 검색만 해도 ‘칼날 같은 산세’를 자랑하는 축령산인 줄 알았다면. 내가 그래도 그 산을 올랐을까?


(다음 이야기는 3편에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이길이 기억될 30번째 생일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