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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Jul 02. 2022

상담을 받았습니다.

나를 마주하는 일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웃고,  먹고,  잤다. 하지만 종종 과거의 일이 토대가  악몽을 꾸거나, " 요즘엔 어때? 행복해?"라고 묻는 친구의 말에 선뜻 ", 행복하지 그럼."이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들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게 사는 거겠지, 하고. 그렇게 마음에 구멍이 하나  송송 생기는 것도 모른  어느새 서른하나가 되었다.


    각종 매체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인기가 대단했다.  프로그램을 종종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금쪽이가 나였다가, 금쪽이의 엄마가 우리 엄마였다가, 왔다 갔다 했다. 서른을 넘어서부터.. 어쩌면  안에 꼭꼭 담아두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자꾸만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소설을 쓰며,  안을 들여다보며,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소설 수업을 같이 듣던 동기로부터, 자신의 지인이 상담 수련의라면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내가 하겠다고, 상담받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비대면 상담을 선호하였으므로 줌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따듯한 눈빛과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니터 너머로까지 느껴졌다. 일주일에  번씩 줌으로 마주 앉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몫은 선생님보다는 나한테  많이 있었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으며, 그렇게  10번의 회기를 마쳤다.


    마지막 회차에 선생님이 우셨는데.. 선생님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자 그 뜨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무척 감동이었다. "제가 파랑 씨에게 무언갈 해준 게 아니라, 파랑 씨 내면의 힘을 우리가 같이 들여다본 거니까요, 그 힘을 잊지 않고 사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주셨다. 준비된 상태로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상담으로 인해 느낀 것 몇 가지.


*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완전히 사랑한다, 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를 한 번은 토닥여 준 것 같아 그 의미가 크다.
* 첫 회기에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라고 상담의 목적을 말했었는데..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
* 외부를 쳐다보고 있던 시선들을 하나둘씩 내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나와 마주 본 후로 나는 점점 나의 외로움을 다룰 줄 알게 되었고, 이것 또한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받기 전후로 드라마틱한 변화라거나, "새 삶을 살게 되었어요." 하는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나의 명치를 세게 누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더 이상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던 현재의 나도, 더 이상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에 상담을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받아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상담을 받는다는 건,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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