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 일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잤다. 하지만 종종 과거의 일이 토대가 된 악몽을 꾸거나, "너 요즘엔 어때? 행복해?"라고 묻는 친구의 말에 선뜻 "응, 행복하지 그럼."이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들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게 사는 거겠지, 하고. 그렇게 마음에 구멍이 하나 둘 송송 생기는 것도 모른 채 어느새 서른하나가 되었다.
각종 매체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 프로그램을 종종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금쪽이가 나였다가, 금쪽이의 엄마가 우리 엄마였다가, 왔다 갔다 했다. 서른을 넘어서부터.. 어쩌면 내 안에 꼭꼭 담아두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자꾸만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소설을 쓰며, 내 안을 들여다보며,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소설 수업을 같이 듣던 동기로부터 눈빛이 따수운 상담사 선생님이 계시단 이야길 듣게 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온라인 상담을 선호하였으므로 줌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따듯한 눈빛과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모니터 너머로까지 느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마주 앉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몫은 선생님보다는 나한테 더 많이 있었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으며, 그렇게 총 10번의 회기를 마쳤다.
마지막 회차에서는 서로의 붉어진 눈시울을 볼 수 있었다. 그 뜨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무척 감동이었다. "제가 파랑 씨에게 무언갈 해준 게 아니라, 파랑 씨 내면의 힘을 우리가 같이 들여다본 거니까요, 그 힘을 잊지 않고 사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주셨다. 준비된 상태로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상담으로 인해 느낀 것 몇 가지.
*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완전히 사랑한다, 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를 한 번은 토닥여 준 것 같아 그 의미가 크다.
* 첫 회기에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라고 상담의 목적을 말했었는데..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
* 외부를 쳐다보고 있던 시선들을 하나둘씩 내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나와 마주 본 후로 나는 점점 나의 외로움을 다룰 줄 알게 되었고, 이것 또한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받기 전후로 드라마틱한 변화라거나, "새 삶을 살게 되었어요." 하는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나의 명치를 세게 누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더 이상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던 현재의 나도, 더 이상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에 상담을 고민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받아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상담을 받는다는 건,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