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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Jul 22. 2022

#1 "여자도 힘 세!"

인어공주 말고 인어왕자

    어렸을 때부터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동화를 좋아했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피터팬, 나아가서는 해리포터까지. 이야기 속에서는 꿈에서나 가능할법한 온갖 멋진 일들이 가득 펼쳐진다.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하는 영어교육이 크게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당시 내가 좋아하던 동화로 만든 영어 DVD를 잔뜩 사셨다. 그 영화들을 내내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어느새 회색을 띤 어른이 되었다. 교육기관에서 실습을 하던 중, 다섯 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넌 여자잖아! 넌 왕자 못 해!"

"아니야! 여자도 왕자 할 수 있어!"

"아니야! 넌 공주야! 누워있어! 힘센 왕자가 구할 거야!"

"여자도 힘 세!"


    내 귀에 또렷이 들려온 그 대화는 마치 누군가 아주 단단한 망치로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얼얼한 기분마저 들었다.

    왜 동화 속 여자 주인공은 꼭 왕자가 필요할까? 힘센 여자는 없는 걸까? 어린 시절 즐겨보던 동화들을 떠올려보면 공주는 늘 연약한 존재였다. 그와는 반대로 왕자는 커다란 백마를 타고 멋진 칼을 차고 있었다. 그 자체로 늠름하고 강해 보였다. 공주는 풍성한 머릿결과 아름다운 드레스... 말곤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당시 싸움을 하던 아이들에게 나 또한 크게 당황하여 우리는 모두 힘이 세고 서로를 구할 수 있다고 다소 진부한 교훈을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모기에 물린 것도 아닌데 내내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박박 긁어준 그림이 있다. 바로 아티스트 Eom Ju님이다. 인어공주가 아닌 인어왕자를 그만의 멋진 그림으로 탄생시켰다. 아래는 그 그림들이다.

    1. 여자는 남자를 내려본다. 남자는 인어왕자. 바다에서 무력하게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고, 여자는 허리에 멋진 칼을 차고 있다.



    2. 여자는 인어왕자를 번쩍 안아 올렸다. 등에 찬 길고 커다란 칼이 번쩍번쩍 빛나는 듯하다.


    3. 인어왕자는 아마도 아파 보인다. 머리 위에 얼음주머니로 보이는 것을 올려두고 욕조 안에 들어가 있다. 여자는 샤워가운을 걸치고 한 손엔 술잔을 든 채 인어왕자를 보고 있다.


    4. 아, 얼마나 기다려왔던 장면인지. 여자는 팔걸이에 팔을 툭 걸치고 위엄을 뽐내며 앉아있다. 재단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어왕자의 치수를 재고 있다.


    타임머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당장 타고 싶다. 어려서 나풀나풀한 공주만을 꿈꿨던 나에게, 실습 당시의 싸우던 아이들에게. 어쩌면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이 멋진 그림들을 보여주고 싶다.


+ 그림의 모든 권리는 엄주 작가님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Eom Ju를 검색하시면 더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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