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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torsangjin Feb 09. 2017

뜻밖에 거닐다

길을 걷다

  

최근 이른바 ‘걷기’ 열풍이 거세다. 관련 서적이나 방송외에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고 경쟁하듯 올레길, 둘레길 각종 길이 생겨났다. 더 멀리는 순례자의 길을 찾아 ‘산티아고’ 걷기를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삶에 많은 시간을 걷는다. 학교나 회사를 갈때도 밥을먹고 영화를 볼때도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때도 우리는 걷는다. 그렇게 바쁘게 매일을 반복하며 걷고 또 걷는다. 그런대도 우리는 늘 바쁜 일상을 쪼개어 걷기를 소망한다. 늘 걸으면서 또 걷기를 꿈꾸는 것이다. 왜일까? 건강을 위한 몸부림이라면 굳이 걷는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삶의 '쉼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달리는것과 구별되게 걷기에는 여유가 녹아있다. 그냥 아무 생각을 않거나 오직 자신을 위한 생각을 하며 여유있게 천천히 걷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산책'이라 한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정의하자면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쯤 되겠다. 그런측면에서 산책이라는게 어쩌면 특정한 장소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잡념을 떨치고 마음편히 걷는다면 그것이 모두가 꿈꾸는 걷기이고 산책이 아닐까? 어떤 여행길에 올라 유명한 어디를 걷지 않아도 우리의 삶이 늘 '걷기'의 연속인 이유이다.


어릴적 걷던 길을 걷다


  아직도 어릴적 살던 그 곳이 남아있다면 꼭한번 찾아가보길 바란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억들을 찾는방법으로 매우 재격이다. 성인이 되어 다시가본 경험이 있다면 십중 팔구는 ‘앗! 작아졌다’라고 느낄 것이다. 미아리에서 태어나 십수년을 살아온 나는 해외에 살고 계신 어머님이 아주 오랫만에 한국에 오셨을때 서울의 바뀐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듯 새로운 명물이 된 청계천부터 서울시티버스까지 열심히 동선을 짜고 예약하며 가이드를 자처하듯 깨방정을 떨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뜻밖에 오래전 우리가 함께 살던 미아리 ‘그 집’에 가보기를 원하셨다. 생각해보니 나또한 그곳을 떠난후 십수년동안 가보질 않은터라 궁금하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그 집을 찾았다. 가는길엔 어릴적 함께했던 추억 이야기가 끝없이 나왔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십수년 한번도 기억을 되집지 않은 이야기들이 서로의 기억퍼즐을 맞추듯 끝없이 쏜아지는게 아닌가. 집앞 골목에서 뛰어놀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일부터 골목길에 오목조목 붙어살던 친구네 이야기들까지 궁금증들이 하나씩 커져갔다. 근처에 다다랐을때 길이 점점 좁아져 더이상 차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차를 세워두고 어머니와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목마다 걸어가는 걸음마다 새로운 기억들이 들춰졌다. 커다른 길목은 작은 골목길이 되어 있었고 웅장하던 집들은 초라한 가옥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을 찾는일은 어렵지 않았다. 크기가 작아졌을뿐 그대로이다. 평일 오후여서일까 조용한 골목길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왔고 

그분과 눈이 마주쳤을때 소름이 돋았다. 십수년전에 뵈었던 그 아주머니가 아닌가. 주름에 흰머리 가득하고 꾸부정하니 여느 노인같아 보이지만 어릴적 인사드리고 뵈었던 그 분이셨다. 어머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분의 집에들어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저씨는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야기 자녀들의 성장과 결혼 그리고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삶을 살고 있는 두분의 이야기... 두분이 지난 삶을 회상할때 난 골목을 마저 걸었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까지 생각나기 시작했다. 어떤 골목에서는 구슬치기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여자아이들 고무줄놀이를 방해하던 일, 말뚝박기와 나이먹기, 오징어 놀이에 싸움박질까지…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현실과 과거가 오버랩 되는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나와 우리 가족 삶의 여정 한폭판을 누볐다. 어머니는 그집에서 나와 눈시울을 훔치며 함들었을 과거와 이별을 고하고 다시 골목길을 나설땐 타임머신을 타고 현실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고 이순간 미래의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에 집중하고 누려야하는 이유이다.


발리인의 길을 걷다


  어느 섬 유명한 사원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유명한 사원을 가기위해 서둘러 걷고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는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곳을 천천이 산책하며 걷기를 추천한다. 이곳은 영화 '빠삐용(Papilon)'에서 주인공이 절벽아래 바다로 몸을  던진곳으로 유명하다. 절벽의 끝에 서서 빠삐용(스티브 맥퀸 역)의 마음을 느껴보기위해 눈을 감았다. 배고픔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 세상을 만나기 위해 절벽아래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빠삐용처럼 우리도 일상을 벗어나 새로움을 만나고싶은 간절함. 그 간절함은 삐삐용의 무엇과 같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절벽을 걸었다. 나는 간절함을 품고 자연은 나를 품어 한참을 걸었다. 80미터 절벽의 끝에서 아찔함은 순간 사라지고 일상에서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고 존재의 가벼움마져 느낄 수 있는 곳, '울루와뚜 절벽 걷기’를 통해 대자연속의 나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절벽 위에 지어진 힌두교 성자의 명상장소라 불리는 '울루와뚜 절벽사원'을 방문하기 위한 길에 불과하지만 발리인들에게는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간절한 무엇을 위해 천천히 걸어갔을 길이였을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사원을 가기위해 스쳐지나가는 '그냥 길’에서 관점의 변화만으로 전혀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발리를 꼭한번 걸어보기를 바래본다. 


@creatorsangjin / 인도네시아 발리, 울루와뚜 절벽사원

*  '울루와뚜 절벽사원’은 바다의 여신 ‘데위 다누(Dewi Danu)’의 배가 변한것이라 전해지는 곳으로 유명하며 발리족들은 ‘아들의 잉태’를 위해 울루와뚜 절벽사원에서 바다의 거북이를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거북이를 발견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길을 걷다 


  세상에서 가장많은 인류가 사는곳, 가장빠른 경제발전과 미국과 대적하는 유일한 나라 ‘중국’ 화려함과 웅장함뒤에 변하지 않는 길이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그저 큰 길을 따라 유명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때 지나치는 작은 골목길 ‘후퉁’의 이야기다. 건물과 건물사이 겨우 두사람이 스쳐지나갈만한 골목길. 이곳은 중국의 변화는 물론 세상의 변화에도 변함없이 아이들이 뛰어놀며 꾸부정이 앉아있는 노인들이 그 길을 지켜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해에는 흉물이라 하여 화려함 뒤에 숨어 주민들은 강제이주를 해야했고 길목들은 사라져갔다. 10여년전 처음 이 길을 봤을땐 그냥 '좁네'라고 쉽게 치부했다. 습하고 지저분하기 까지한 길을 2번째, 3번째 보면서도 그저 스쳐지났다. 그러던 언젠가 길에 대해 알게되었고 찬찬히 들여다 보게되었다. 그곳에서 중국 서민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길은 그들의 삶 자체였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이방인의 시선에는 그저 어둡고 습한 좁은 길이였지만 말이다.  

어느날 그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길의 입구에서 바라보는것이 아닌 그들 삶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하나둘씩 새로움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집 입구에 보이는 집안 살림들과 대낮에 누워 뒹굴대는 사람들 그리고 삶이 배어있는 생필품들까지 하나하나가 낫선 현실이었다. 그렇게 동질감을 느끼고 걸어가기를 한참. 해맑게 공을차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만났다. 얼굴에는 한가득 즐거움이 묻어났다. 짧은 인사를 하고 어릴적 뛰어놀던 나의 골목길을 떠올렸다. 복잡한 현실도 삶의 무게도 없던 순박했던 시절. 지금을 살아가지만 늘 아이처럼 살기를 꿈꾸는 현대인들중에 한명인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툭' 털어내고 다시한번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마음먹으며 남은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지금을 누리며 살길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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