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reator Center Jan 13. 2021

타고난 재능이 정말 중요할까?

애니메이션 감독 규멩

규멩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나이는 22살. 고등학생 때 이미 창작 애니메이션을 할 정도로 재능이 돋보였다. 이후 메이플스토리, 쿠키런 등 굵직한 게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4년 경력의 실력자가 됐다. 어린 나이에 프로의 세계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자존감 덕분이다. 규멩의 내면은 단단하다. "재능이 없어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미술 전공자들에게 "내 그림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Q.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 돈을 벌었어요. 처음 일을 받았을 때가 기억나나요?
생생하게 기억나요. 고3 때 앨리스 추(Alyce Tzue) 감독님이 디즈니에 제안할 애니메이션 디자인을 맡기고 싶다며 연락이 왔어요. 들뜬 마음으로 작업했던 기억이 나요. 그땐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실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죠. 좋은 기회였지만 많이 어렸던 게, 학생인 걸 감안해도 엄청나게 적은 액수로 작업했거든요. 스스로의 가치를 잘 매기지 못했던 거죠.


Q. 일찍 시장에 나간 게 힘든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일과 하고 싶은 작업이 달라서 괴로울 때가 많았죠. 가치관에 반하는 설정이 담긴 작업을 의뢰받을 때도 있었고요. 이제는 내 창작물과 일로 하는 그림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 실력이고 프로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까지 오는 게 정말 어려웠지만.


Q.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이 두렵지는 않았나요?

무서워요. 매번 확신이 없고요. 그래도 계속 해보는 편이에요. “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들 옆에서 합리화하며 기회가 오면 거절하지 않아요. 시작할 땐 안 될 이유가 충분하지만 마지막엔 어떤 식으로든 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쿠키런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들 때도 그랬거든요. 회사에 들어갔는데 예정에 없던 애니메이션 팀을 꾸리는 일이 주어졌어요.


그때가 스무살이었어요. 갑자기 팀장이 됐고 사람을 모아야했어요. 언뜻 보면 멋진 일 같지만 실제로는 엉망진창이었죠. 애니메이터 친구에게 무턱대고 전화해서 “혹시 지금 백수야? 나랑 일하자”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맞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아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하는. 그렇게 하다 보니 처음에는 6개월 걸리던 게 4개월 걸리고 그 다음엔 2개월로 줄었어요.



재능은 모터 역할을 할 뿐
목적지를 정하는 건 방향키에요


Q. 일로서 그림을 그리는 데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림으로 먹고 살겠다고 결정하면 재능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요. 기본기를 갖춘 뒤엔 시장에서 차별점을 갖는 게 중요하거든요.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해요. A라는 사람이 반을 운동에 쓰고 반만 그림을 그렸다면, 몸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 잘 아는 애니메이터가 되는 거죠. 그 사람의 강점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차별점이 나타나죠. 이것을 내 그림과 어떻게 섞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재능은 모터 역할을 할 뿐 목적지를 정하는 건 방향키에요.


Q. 그림을 가르칠 때 그리는 것보다 먼저 내 그림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말해준다고 들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림은 내가 아니에요. 그림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해요. 스무살 때 제가 만든 캐릭터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심한 우울증을 겪었어요. 그림 그릴 힘이 없었죠. 스스로 그림이 아니면 쓸모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던 때였거든요. 그림으로 높여왔던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거죠.


그때 친구가 저를 데리고 나가 게임을 하자고 했어요. 예상외로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림이 아닌 데도 그림처럼 즐거운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 그림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그림을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으로 좋아하는 게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요. 수강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이죠.



결핍은 행복의 원동력이에요


Q.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요?

독자들이 결핍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캐릭터를 응원했으면 해요. 등장인물이 목표를 이룰 때 위로 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고요.

Q. 결핍이 있는 사람만 결핍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어요. 중학생 때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지금 제 파트너도 여성이고요. 가족에게 이해 받지 못한 것도 결핍이죠. 그래서 제가 만든 캐릭터 중에는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많아요.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캐릭터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Q. 현실의 규멩이 결핍을 극복하려는 것처럼 캐릭터도 조금씩 성장하나요? 
스스로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서 ‘이 캐릭터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누구나 태어난 것만으로 사랑 받을 수 있잖아요. 예전에는 캐릭터가 친구 손에 죽거나 자살하기를 바랐는데, 자기 혐오가 심했던 거죠. 이제는 다른 결말을 주고 싶어요. 내 캐릭터가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깊이 있는 인물이 되었으면 해요. 결핍이 중요한 테마인 이유는 궁극적으로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행복하려면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뭔지 알아야 하니까요.



Q.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수강생 중 새벽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 정말 기뻐요. 누군가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건 보람찬 일이니까요. 그래서 선한 영향력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데, 제 작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보듬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Q. 여전히 본인의 일을 좋아하나요?

당연히 좋아하죠. 완전 좋아해요. 대신 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양해졌어요. 예전에는 그림을 완성하고 칭찬을 받는 게 제가 기대하는 유일한 보상이었다면 요즘은 아니에요. 클라이언트와 시너지를 주고 받는 것,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연을 이어가는 것, 아크릴화나 타투로 작업 방식을 확장하는 것에서도 보람을 느껴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사랑만이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이유는 아닌 거죠.



Creator 규멩
19살 때 사극 판타지 애니메이션 <그르메따라>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들었다.  <시타를 위하여>의 프로모션 비디오도 제작했다. 주얼리 브랜드 스톤헨지의 캠페인 광고와 BTS의 멤버 RM의 뮤직비디오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클래스101에서 애니메이션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