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요나
요나는 제철 채소를 요리한다. ‘재료의 산책’은 계절에 맞는 재료로 메뉴를 채운 팝업 식당이다. 맛없는 재료를 맛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맛이 오른 제철 채소와 최소한의 조미료로 맛을 낸다. 억지로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것. 요나가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Q.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며칠이라고 정확하게 답하기는 어려워요. 장을 한 군데서만 보지 않기 때문에 좋은 재료가 나오면 그때마다 수집해요. 재료만 해도 일주일간 발효가 필요하거나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꾸준히 준비해야 하고요.
Q. 요리는 손이 많이 가잖아요. 준비과정이 지루하진 않나요?
사람들은 손질된 재료를 놓고 불을 잡는 것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먹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는 것부터 요리예요. 재료를 사는 것부터 설거지를 하고 그릇의 물기를 닦아 그릇장에 넣는 것까지 모두 요리의 과정이고요. 같이 먹을 친구에게 연락하는 것이나 주방을 청소하는 것도 요리일 수 있어요.
준비과정이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 과정이 요리에서 제일 재밌다고 생각해요. 재료를 손질하면서 쉬거든요. 나물을 다듬으면서 TV를 보고 라디오를 듣거나 멍 때릴 수도 있으니까요. 요리는 노는 기분으로 조금씩 쌓아 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요리를 하려고 해도 막상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무작정 요리 시간을 늘릴 수 없죠. 사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요리에 시간을 쓰게 돼요.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챙겨 먹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니까요. 대신 요리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기억하는 거예요. 가능하면 일주일에 하루, 한 달에 며칠만이라도 요리를 해보면 좋겠어요. 그 습관이 몸에 익으면 지금보다 삶이 나아질 거예요.
요리는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Q. 그럼 반대로 요리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요리 시간을 줄이고 싶은데 맛있고 건강하게는 먹고 싶다는 생각에는 모순이 있어요. 요리는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거든요. 내 하루에서 요리에 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게 맞아요.
Q. 직접 카페 레스토랑이나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왜 그만뒀나요?
식당을 운영할 땐 완벽주의가 심했어요. 하루 종일 엄청난 강도로 일했죠. 결국 몸이 망가졌고 어느 순간 짜증을 내고 있더라고요. 그때 잘못된 걸 느꼈어요. 스스로를 위한 건 하나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만 하고 있었던 거죠.
Q.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완벽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난 계기가 있나요?
재료를 통해서 깨달았어요. 제철 양파에는 소금만 뿌려 구워도 엄청 맛있거든요. 지금까지 먹었던 양파가 맛있지 않았던 건 수입산이라 유통 과정에서 수분이 많이 날아갔거나 제철이 아니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이전까진 맛없는 재료를 억지로 맛있게 만들려고 했던 거죠.
인간관계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려고 하면 긴장하게 되고 실수하기 마련이잖아요. 억지로 잘하려고 할 필요 없다는 걸 요리를 하면서 배웠어요. 포기해야 하는 게 뭔지, 무엇을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제철 음식을 먹을 때 생기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공유하고 싶어요
Q. 다시 요리로 돌아가 볼게요. 어떤 요리를 만들고 싶나요?
맛있는 음식을 내는 것 자체가 제 요리의 목적은 아니에요. 요리를 통해 계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철 음식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공유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요리를 꼭 먹었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요. 모두가 집에서 직접 요리하길 바라거든요. 팝업 식당을 여는 건 직접 요리를 준비하면서 재료에 대해 공부할 수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철 재료와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싶어요. 제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아, 요즘 호박이 나오네. 시장 가서 호박 좀 사볼까? 나도 요리 좀 해볼까?’ 같은 자극을 받았으면 해요.
Q. 요리사 요나에게는 요리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요.
요리를 하는 과정이 내 안의 어딘가에 다 남는다고 생각해요. 직접 재료를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오감을 다 쓰게 되잖아요. 주변도 달라지겠죠. 냉장고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집을 가꾸기 시작할 수도 있고요. 요리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 생활패턴도 변해요. 저에게 요리는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인 셈이죠.
Q. 요리를 일로서 사랑하나요?
엄청 사랑하죠.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으니 꽤 많이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이게 요리가 아니라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면 좀 끔찍할 때가 있긴 해요. 일과표를 만들고 보면 하루 종일 일하는 걸 수도 있더라고요. 그만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Creator 요나
일본 도쿄의 타마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2012년 요리 에세이 『요나의 키친 Yona’s kitchen』을 발간했고 이태원에서 ‘플랜트’, ‘요나요나버거’, ‘유니버스 샌드위치’를 운영했다. 현재는 서울 홍은동 작업실에서 ‘재료의 산책’이라는 제철 채소 팝업 식당을 운영 중이다. 클래스101에서 채소 요리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