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디자이너 고유
“제주도로 잠깐 떠날 생각이에요.” 다음 작업 계획을 묻자 휴식기를 갖겠다고 했다.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 1인 브랜드 고유를 운영한 지 5년.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처음 주얼리를 시작하던 때를 떠올려 보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일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Q. 휴식기를 가지려는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브랜드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돈도 더 많이 벌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성장도 마음처럼 빠르게 되지는 않고요.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당분간 작업을 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Q.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게 어떻게 다른가요?
고유의 주얼리를 본 친구들은 하나 같이 “디자인이 특이하고 너다워. 근데 매일 하고 다니기는 어렵지 않아?”라고 해요. 예전엔 나답다는 이야기를 더 믿었어요. 최근엔 뒤에 붙는 말이 더 신경 쓰이더라고요. 제작 비용을 줄이려면 비교적 제작 공정이 단순한 디자인을 해야 해요. 데일리룩에 어울리는 주얼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디자인에 한계도 많아지죠.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 수 있는데 작업자로서는 고민이 커졌어요.
Q. 취미가 직업이 되면 힘들다는 이야기는 다들 많이 하잖아요.
힘들죠. 어느 순간 취미의 순수한 기쁨은 사라지고 일만 남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한 노력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왜 지금의 일을 좋아했고 직업으로 삼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 처음 했던 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 보는 게 지금 해야 하는 노력인 것 같아요.
Q. 금속 공예를 전공한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패션 관련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했고, 인디 음악 레이블에서 일하기도 했어. 모두 내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으로 만드는 일을 찾아봤어. 어렸을 때부터 비즈를 꿰어서 반지나 팔찌를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 마침 수업 시간이 맞는 금속 공방에 다녔는데, 작업을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게 좋았어.
Q. 처음부터 보여 주고 싶은 주얼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조형적인 이미지가 살아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불안했던 시기에 각이 지고 불안정한 모양에서 묘하게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언스테이블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첫 상품을 선보였어요. 심플하고 볼드 하면서도 날것의 느낌이 많이 살아 있는 게 지금까지 유지되는 고유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Q.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제작하는 핸드 크래프트 방식으로 주얼리를 만들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핸드 크래프트는 기계보다 더 많은 형태를 만들 수 있어요. 물론 상업화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긴 하죠. 브랜드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거든요. 사업적인 계산보다 당장 내가 재미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훨씬 컸어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Q. 작은 실수 때문에 완성품을 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깝진 않나요?
완성 직전에 실수해서 못 쓰게 되면 육성으로 욕이 나와요. 브랜드 초기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죠. 도무지 홈페이지에 올려둔 제품과 똑같이 만들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내 실력에 화가 나서 울다가 밤을 새우며 완성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덕분에 실력이 빨리 늘었죠.
Q. 여러모로 브랜드를 운영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힘든 부분은 없나요?
금전적인 부분이죠. 창업했을 때 모아둔 돈이 별로 없었어요. 6개월 동안은 주 6일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낮에는 귀금속 거리를 가거나 작업을 하고, 저녁 6시까지 고깃집에 출근해서 자정에 퇴근하고요. 어느 순간 그 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그만뒀어요. 사실 이건 나중에 크게 성공하면 말하려고 아껴둔 에피소드인데... 하하.
Q. 그런데도 총 여덟 개의 컬렉션을 열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뭔가요?
언스테이블, 머니 클립, 피규어 컬렉션을 같은 시기에 준비했어요. 형태와 느낌에 집중한 컬렉션이에요. 룩북 촬영도 전문 모델을 섭외하거나 스튜디오를 빌리지 않고 단편 영화처럼 찍었어요. 이때 사진을 보면 주얼리가 안 나와요. 느낌과 분위기만 가득해요. 다른 사람 말에 휩쓸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던 때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최근의 작업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에요. 우선은 컬러가 다양해졌어요.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전엔 주로 실버 작업을 했는데 이번엔 유색 스톤을 사용했어요. 매일 착용하기 쉬운 라인도 추가해서 다른 방식의 고유를 만들고 싶었어요. 대중성과 개성의 접점을 찾고 싶어 준비한 컬렉션이죠.
Q. 접점을 찾은 것 같아요?
아니요. 못 찾았어요. 오히려 정확히 알았죠. 이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구나. 대중성이라는 허들을 두면 디자인에도 한계가 생기거든요. 전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위트 있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요. 새장 모양의 주얼리를 열면 스톤이 있다거나 사람 모양의 주얼리처럼 대량으로 만들 수 없는 디테일이 가미된 작업들이요.
Q. 여전히 일을 사랑하나요?
만약 애증도 사랑이라면 예스.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게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이지만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해요. 고유라는 브랜드와 제가 잘 분리되지 않거든요.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걸러 들으려고 해요. 먼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요. 내 일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한 거죠.
Creator 고유
본명은 권혜선. 주얼리 브랜드 고유(GOYU)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디자이너다. Unstable, GLAM IN BLAKC, BODY NARRATIVE 등 6개의 주얼리 컬렉션을 진행했다. 핸디크래프트 방식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주얼리 디자인이 특징이다. 클래스101에서 실버 주얼리 공예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