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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Dec 27. 2022

아프다고요

병원과 의사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사람이 참기 힘든 통증 중에서 치통이 제일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건강한 치아는 오복의 하나라고 하나 보다. 남의 일 같았던  치통 문제가 요즘 나를 괴롭히고 있다.


치과에 갈 때마다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해보지만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다가 적당한 비유를 떠올렸다. '추운 날 물속에 손을 넣었을 때처럼 아파요.'


양쪽 위 어금니 부근의 치아가 아프다. 찬 것, 뜨거운 것이 들어가거나 음식을 씹을 때 순식간에 통증이 온다. 통증이 턱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밀려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니 뭘 먹을 때면 긴장부터 된다. 앞니 위주로 씹거나 제대로 씹지 못하고 우물우물 대강 넘기는 식이다. 계속 이러면 치매나 혈당 장애 같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특이한 것은 이런 증상이 코로나 이후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아래쪽 어금니에 비슷한 증상이 있어서 오랫동안 치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아래쪽 통증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대신 위쪽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의사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말도 안 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잘못 얘기했다가 책임질 일 생길까 봐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암튼 시점으로 보면 딱 그렇다. 


베트남에서 코로나에 걸렸을 때 처방받은 약이 딱 세 알이었다. 이 세 알의 약으로 커버되지 않는 고통은 온몸으로 극복해 내야 했다는 뜻이다. 일주일을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앓았고 결과적으로 몸의 이곳저곳에 타격을 받은 것 같다. 


귀국한 이후 한 달 정도 근처 치과를 다녔다. 처음 몇 번은 이런저런 치료를 하더니 4번째 가니까 지켜보자는 말 이외에는 더 이상 별다른 치료가 진행되지 않았다. '미세하게 금이 간 치아가 많다.', '잇몸이 많이 내려앉아있다.', '자극적이거나 딱딱한 걸 피하고 이를 아껴서 써라.'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진단을 듣고 더 이상 그 치과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조용한 방에 불려 들어가 상담사가 뽑아내는 무지막지한 견적을 한두 번 경험한 후부터, 치과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불신을 가지고 있다. 견적의 이면에 깔려있는 협박성 발언은 내내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를테면 '지금 이 정도 금액이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그 몇 배의 비용이 든다.', '더 심해지면 틀니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같은 무서운 말들이다. 물론 모든 치과 병원이 다 그럴 리는 없고 내가 겪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아프면 나만 힘들어. 다 소용없더라고. 어디 아프면 대충 넘어가자 말고 더 심해지기 전에 악착같이 치료해.'. 하도 아픈 데가 많아서 별명이 종합병원인 누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라며 늘 이렇게 말한다. 물론 가족들이 걱정해 주고 보살펴 주기는 하겠지만 결국 다른 사람이 대신 아파줄 수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삼차 신경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차신경(trigeminal nerve)은 얼굴과 머리에서 오는 통각과 온도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뇌신경인데, 이 삼차신경에 병적인 변화가 생겨 얼굴의 감각이상과 함께 씹기 근육의 근력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라고 한다. 증상이 유사해서 치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삼차 신경통이었다는 여러 사례를 검색할 수 있었다.

  

나도 해당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정확한 원인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다음 날 부리나케 근처 신경외과로 향했다. 후기에 적힌 평판이 좋았던 ㅇㅇㅇ신경외과에는 노인 몇 분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졸고 계시던 한 할아버지는 간호사가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라 얼떨결에 진료실이 아닌 입구 출입문 쪽으로 나가시기도 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그런 거 몰라요. 삼차신경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 가 보세요. 소견서라도 한 장 써 드릴까요?"


볼펜으로 책상 위를 콕콕 찍으며 증상에 대한 설명과 내 생각을 듣던 의사분께서 내린 결론이다. '나와 이 병원은 신경통이나 관절염 때문에 오는 노인들 물리치료나 하는 수준이니 그런 어려운 병은 전문적인 병원에 가 보세요.'라는 말로 들렸다. 대체 써 준다는 소견서에는 뭐라고 적을 건지 궁금했다.


동네 병원을 포기했다. 먼저 종합 병원 치과를 가 보고, 거기서도 치과적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종합 병원 신경외과를 가는 걸로 나름 순서를 정했다.


종합 병원 예약하기가 어려운 걸 알기는 했지만 두 달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치과는 온라인 예약이 안되고 직통 유선 전화로만 예약을 받았다. 통화가 쉽지 않았지만 코로나 대유행 이후로 뭐든 '기다리는'것에 길들여져 있다. 몇 번의 시도와 기다림 끝에 일단 예약을 잡은 다음,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전화해서 한 달 뒤로 예약을 앞당겼다. 중간에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는 잔머리가 주효했다.


드디어 ㅇㅇㅇㅇ병원 치과 가는 날, 만약 큰 문제가 발견된다면 돈도 많이 들고 치료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까지 했다.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합 병원이니까.


대기실 디지털 안내판에 올라와 있는 담당 의사는 이름이 두 글자인 젊은 여자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엑스레이를 찍었다. 얼마쯤 후에 8번 치료실로 부르더니 다짜고짜 의자를 눕혔고 대강 살펴본 다음 잔금이 많다느니, 잇몸이 내려갔다느니 동네 치과에서 귀가 닳도록 들은 말들을 했다. 그러고는 휙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간호사가 와서는 '스케일링이라도' 하고 갈 거냐고 묻길래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거라도 하는 게 낫지 싶어서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3주 후에 오란다. 


아무래도 종합 병원이니까 뭔가 장비도 다르고 의사도 다르고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진단해 줄 것이라는 생각, 환자의 입장에서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써줄 것이라는 기대가 일순간 무너졌다. 갑자기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입만 열어도 바람에도 이가 시린 고통 속에 3주를 보내고 다시 그 종합병원 치과를 방문했다. 그 사이 예약 확인 문자는 두 번이나 왔다. 이번에는 어떤 결말이 날지 대강 짐작이 갔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한 번만 더'라는 심정이었다.


물인지 바람인지 이곳저곳에 차가운 것을 뿌려보고는 가장 심한 치아 하나를 지적하면서 일단 뭘로 씌워보고, 안되면 신경 치료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옆에 걸 같은 순서로 하자고 했다. 의사는 또다시 휙 사라져 버렸고 이어서 역시 간호사가 등장했다. 


"씌우는데 70만 원, 신경 치료하면 100만 원이고  하실 거면 본을 떠야 하니까 미리 예약하셔야 돼요. 하실 거예요?"


물론 내가 가지 않아도 여전히 예약하는 데 두 달씩 걸리겠지만, 당연히 그 병원 치과는 더 이상 가지 않을 것이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근처의 또 다른 치과 병원을 알아봐야겠다. 어차피 똑같을 거라면 거리가 가깝고, 환자 친화적이며, 신뢰가 가는 곳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좋은 치과 병원처럼.


어느 늦은 저녁 퇴근길이었다. 이수역 지하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 미터쯤 앞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어설프게 서성 거리고 있었다. 짧은 파마머리에 베이지색 바지 정장을 입고 둥근 테의 안경을 낀 평범한 차림이었다. 아주머니는 나 하고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듯 내 옆쪽으로 한 발 다가오면서 명함 전단지 한 장을 건넸다.


"우리 아들이 근처에 치과를 개업했어요. 오실 일 있으면 한 번 찾아 주세요." 


아들이 개업했다고? 그럼 이 분이 엄마?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일종의 설정인가? 근데 진심이 느껴지는데? 저런 어머니의 아들은 어떤 사람일까? 다른 때처럼 받은 전단지를 바로 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날 때쯤, 아래쪽 어금니 부근 통증이 다시 심해져서 명함에 적혀있는 치과를 방문했다. 혹시 처음 개업한 건 아닌지 간호사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다른 데서 10년을 하다가 이쪽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불편하거나 부담스럽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하고,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감안해 주고, 치아와 잇몸 사이 충전재로 메워 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5주 동안 치료를 받았고 증상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어머니의 정성이 아들에게도 이어져 있는 듯, 내 기억 속의 '좋은 의사'이다. 다시 그 치과를 가고 싶지만 지금은 집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여서 선뜻 움직이기가 쉽지는 않다.    


대부분의 많은 의사분들은 최선을 다해 직업적인 의무를 완수하려 노력할 것이다. 사명감 없이 버틸 수 없는 힘든 일을 하며 인류에 큰 공헌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프기 때문에 의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환자의 처지를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돌아보는 의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호들갑스럽게 치통 정도 가지고 너무 비화시킨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는 내 치아에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잇몸 영양제, 구강 세정제, 센*** 치약, 치실, 치간 칫솔... 소를 마저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내 치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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