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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an 01. 2023

남자 사우나에서 생긴 일

안 그러면 안 될까요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국내 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찜질방 아쿠아**에 다녀왔다. 야외풀 같은 여러 시설이 있지만 나는 주로 찜질방과 사우나를 이용한다. 뜨겁지 않은 방들은 패스하고 소금방, 황토방, 불가마에 들어갔다가 사우나를 하고 나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요금은 동네 목욕탕의 두 배이지만 효용이나 만족도 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      


사우나 열탕이나 고온 찜질방에 오래 들어가 있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베트남에 있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한국식 사우나와 찜질방이었기에 요즘에는 아주 만끽하고 있다. 유럽 쪽 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 나라는 물을 뜨거운 돌에 끼얹어 열을 내는 증기식 사우나이다. 한국 사람은 역시 한국 스타일이 좋다. 뜨거운 온돌에 등을 대고 좀 지져야 하고 뜨거운 열탕에 몸을 푹 담가야 피로가 싹 풀린다.

  

평일 낮에 가면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다. 요새는 주로 혼자 노는데 아직은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남의눈을 의식하는 편이어서 이곳처럼 혼자라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 좋다.     


코로나 감염 이후 자연 면역이 생긴 지 4개월이 지나고 있어서 약해졌을 항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찜질방 안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에는 2가 백신을 맞아야겠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중단하고 출입국 규제를 푼다고 하니, ‘우한’ 때처럼 다시 중국발 대유행이 올지도 모른다. 어째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풀어놓겠다는 거나, 중국이 출입국 규제를 풀어놓는다는 거나 장면이 비슷하다. 베트남에서 호되게 코로나 신고식을 치렀고,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생하고 있기에 나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놈이다.    

 

찜질방에는 젊은 여자분들이나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여럿이 몰려다니던 아주머니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이고, 혼자 앉아있는 내 나이 또래 남자들도 띄엄띄엄 보인다. 사실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는 모습은 어디에서든지 어색하다. 황토방 한쪽 구석에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보드게임 같은 걸 하고 있다. 똑같이 양머리를 하고 소곤소곤 거리는 모습이 예뻤다. 대체 나는 저 나이 때 뭘 한 거야?     


땀을 한 바가지쯤 흘리고 잠시 찬바람을 쏘이러 나왔는데 운동장이라도 만난 듯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평화를 깨뜨렸다. 입구 쪽에 아이들 놀이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아이들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참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불편하기는 하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시도 때도 없이 드럼을 두드려대던 학생이 언젠가 이사 갔고, 지금은 이 아이들이 산다. 현관 문고리에 걸려있는 마스크 선물이 담긴 봉투를 보고 알았다. 편지에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조심시키겠지만 양해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그리 알고 가급적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인가?’ 하는 날카로운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막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좀 시끄러워도 그냥 입 다물고 산다. 다만, 지금은 독립해서 나간 학생 신분이자 취준생이었던 아들이 힘들어했다.      


아이들이 공중도덕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통제하는 것은 부모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어른들이 ‘이해’ 해야 하는 부분으로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이해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고지식한 꼰대라고 비난받을지 몰라 조심스럽기는 하다. 얼마나 귀한 아이들인데.     


일본 가정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이른바 ‘스미마셍 정신’이다. 길 가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스미마셍’을 외치며 서로 비켜준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일부 부모들은 친구와 싸운 것보다, 맞고 들어온 것을 더 야단친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길에서 사람과 마주쳤을 때 어깨에 힘을 주고 부딪힐 준비부터 하지 않을까? 먼저 비켜주면 지는 거니까.     


물론 반대로 ‘어른이’ 문제도 가볍지는 않다. 요즘에는 ‘노중장년존’이 생기기도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어른답지 못하고 얼마나 꼴불견을 일삼았으면 그럴까 싶어 씁쓸하다.      


‘노키즈존’, ‘노펫존’, ‘노중장년존’이 늘어나는 이런 세태를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세분화되고 세상이 점점 마이크로화 되는 트렌드의 하나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기는 하다(김난도, 트렌드코리아 2023).      


종로구의 어느 카페 게시문(신문 기사에서 이미지 인용)

체온이 높아져 있는 탓인지는 사우나탕의 물 온도가 너무 낮아 열탕 한 군데 이외에는 더 들어갈 곳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넓고 쾌적하고 적당한 조명이 갖춰져 있어 탕 속에 앉아 있노라면 심신이 느긋해진다. 조명의 디테일은 사람과 사물을 돋보이게도 하고, 반대로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감추어 주기도 한다. 옆 샤워 부스에서 물이 튀거나 복작거리지 않은 점도 아주 좋다.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사우나가 집 근처에도 있었다. 나의 최애 장소이던 스포츠센터였다. 운동 시설과 사우나 시설이 호텔급으로 잘 갖추어져 있었고 연회비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며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워서 오랫동안 이용하고 있었는데 경영난을 이유로 갑자기 문을 닫았다. 오피스텔로 바뀔 거라고 했지만 지금도 그냥 문을 닫은 상태로 있다. PT 트레이너 말에 의하면 회원 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픈 초기 할인 회원권을 남발했고, 가격 책정을 낮게 잡아 적자가 누적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원인 외에, 내가 생각하는 그 스포츠센터의 폐업 원인이 있다. 젊은 층의 유입을 끌어내지 못한 타기팅 오류가 숨겨진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그 스포츠센터의 사우나를 이용하던 일부 유별난 고령 회원들로 인하여 좋지 않은 입소문이 난 것은 혹시 아닐까 하고 일방적, 주관적으로 추정한다.


남성을 특별히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여자 사우나에는 들러갈 수가 없으니 그곳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디에나 꼴불견은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거의 매일 다녔기에 그런 환경에 자주 노출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스포츠센터 사우나에는 유독 유별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몇몇 사례들을 적어보려 한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좀 더러울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란다.     


첫 번째 사례는 '스킨로션 들이붓기 신공'이다. 머리와 얼굴의 경계가 모호한 그는 사우나에 비치된 스킨로션을 이마 위에 대고 들이붓는다. 보통의 경우 손바닥에 적당량을 따른 다음 얼굴에 펴 바르는 바로 그 스킨로션을 말이다. 병에 담긴 양의 삼분의 일은 족히 넘었을 만큼 들이붓고 나서야 얼굴과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를 문질러댄다. 그러고는 본인의 효율적인 행동에 만족한 듯 거울을 바라본다.


다음으로 '냉온탕에 동시 담그기 기술'이다. 냉탕과 온탕의 경계 칸막이에 드러누워 한쪽 팔다리는 냉탕 쪽에, 다른 쪽 팔다리는 온탕 쪽에 담그고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물론 목욕탕 안이므로 다 벗은 상태이다. 무슨 침대 과학도 아니고 30cm가 채 안 되는 경계석에 흔들림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샤워기 아래에서 명상에 잠기기'는 합장만 하면 거의 도 닦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샤워기 물을 최대한으로 틀어 놓고 그 아래 가부좌에 팔짱을 끼고 앉아 물을 맞는다. 마치 폭포수 아래인 양 태연자약하다. 대체 그는 맨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건 마니아'도 빠질 수 없다. 사용하는 수건이 한두 장은 절대 아니다. 참고로 남탕에는 사용하는 수건 장수의 제한이 없다. 우선 기본적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건처럼 두른다. 건식이나 습식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수건에 찬물을 적셔 손에 들고 들어간다. 때를 밀 때는 동그란 목욕용 간이의자에 한 장을 깔고 앉는다. 매번 새로운 수건이다. 그렇게 목욕이 끝나고 나오면 우선 발밑에 기본 한 장을 깐다. 다른 한 장으로 몸에 물기를 닦는다. 지금까지 그가 사용한 수건의 총개수는?


이번에는 비위가 상하는 좀 더러운 이야기이다. 계속해서, 정말이지 계속해서 가래침을 뱉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카아악~퇘!" 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쩌렁쩌렁 울린다. 골이 흔들려 10리쯤 도망가고 싶다. 화장실에서 소변보면서 소변기에 가래를 뱉는 사람 못지않게 더럽다. 영역 표시라도 하는 건가? 이 가래침 쟁이는 샤워하다가 배수구 구멍에 소변보는 사람, 탕 안에 앉아서 발가락 사이 때 파는 사람을 단연코 넘어선다.  

   

드라이어의 용도를 아주 다양하게 활용하는 아이디어 맨도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드라이어는 머리칼을 말릴 때 사용한다. 하지만 그걸로 온갖 군데에 다 들이댄다.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 그리고 짐작하시는 그곳에도. 그렇게 쓸 곳에 다 쓰고 나면 드라이어를 작동시킨 채 선풍기 반대편에 눕혀놓고 '우냉풍, 좌열풍!'의 맞바람을 즐긴다.     


자신이 쓴 물건의 뒷정리 같은 하찮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고귀하신 분도 있다. 바로 옆에 수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한 수건이나 운동복은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 두고, 사용한 화장품 병뚜껑은 닫는 법이 없으며, 뽑아 쓴 휴지는 뽑을 때처럼 휙 날려 버린다. 물론 선풍기를 끄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집에서는 어떨까 무척 궁금하다. 집에서도 이러면 같이 사는 분이 참 힘들겠다 싶고, 만약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다면 대단한 이중인격자임에 틀림이 없다.      


'쭈쭈바'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줄 알았다. 치약 튜브를 입에 '물고' 치약을 눌러 짜 입에 머금은 다음, 다시 치약 튜브는 내 동댕이치듯 던져 버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칫솔을 흔들면서 유유히 사라진다. 양치질하러 가는 것 맞겠지? 아마도 그 사람은 손을 장식품으로 달고 있거나 아니면 아껴서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좀 무서운 경우도 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이빨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태닝을 했다. 좀 이상하다 싶은 시선을 자주 느꼈는데 그러다 한 번은 딱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그윽한 표정과 묘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용하는 시간대를 다른 시간으로 바꾸었다.     


그만하자.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편이 갈릴 때가 되었다. '나도 봤다.'거나 '공감한다.'거나 '뭐 그런 걸 가지고 유난을 떠느냐.' 또는 '참 유별나다.' 등등. 해서 이 정도로 멈추기로 한다. 이 사우나에는 유독 연세가 많으신 영감님들이 많았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얘기한 유별나고 유난스러운 일들이 그분들과 적지 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 대체 사우나에서 뭘 하라는 거냐고? 사우나에서는 그냥 몸을 씻고 마음을 씻자. 다이상한 짓 하지 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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