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형 찜질방에 다녀왔다. 평일 낮에 가면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다. 요새는 주로 혼자 노는데, 아직은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남의눈을 의식하는 편이어서 이곳처럼 혼자라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 좋다.
야외풀 같은 여러 시설이 있지만 나는 주로 찜질방과 사우나를 이용한다. 뜨겁지 않은 방들은 패스하고 소금방, 황토방, 불가마에 들어갔다가 사우나를 하고 나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요금은 동네 목욕탕의 두 배이지만 만족도 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
해외 근무하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한국식 사우나와 찜질방이었다. 유럽 쪽 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 나라는 물을 뜨거운 돌에 끼얹어 열을 내는 증기식 사우나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역시 한국 스타일이 좋다. 뜨거운 온돌에 등을 대고 좀 지져야 하고 뜨거운 열탕에 몸을 푹 담가야 피로가 싹 풀린다.
찜질방에는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그보다 훨씬 다수의 아주머니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먹거나 수다 삼매경이다. 나처럼 혼자 앉아있는 내 나이 또래 남자들도 띄엄띄엄 보인다. 사실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는 모습은 어디에서든지 어색하다. 황토방 한쪽 구석에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커플이 보드게임 같은 걸 하고 있다. 똑같이 양머리를 하고 소곤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대체 나는 저 나이 때 뭘 한 거야?
땀을 한 바가지쯤 흘리고 잠시 찬바람을 쏘이러 나왔는데 운동장이라도 만난 듯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평화를 깨뜨렸다. 입구 쪽에 아이들 놀이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아이들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참기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불편하기는 하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시도 때도 없이 드럼을 두드려대던 학생이 이사 갔고, 지금은 이 아이들이 산다. 현관 문고리에 걸려있는 작은 선물과 편지를 보고 알았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조심시키겠지만 양해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그리 알고 가급적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인가?’ 하는 날카로운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막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좀 시끄러워도 그냥 입 다물고 산다.
아이들이 공중도덕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통제하는 것은 부모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어른들이 ‘이해’ 해야 하는 부분으로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이해심 없는 고지식한 꼰대라고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가정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이른바 ‘스미마셍 정신’이다. 길 가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스미마셍’을 외치며 서로 비켜준다. 반면, 한국의 일부 부모들은 친구와 싸운 것보다, 맞고 들어온 것에 대해 더 야단을 친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 길에서 사람과 마주쳤을 때 어깨에 힘을 주고 부딪힐 준비부터 하지 않을까?
물론 반대로 ‘어른이’ 문제도 가볍지는 않다. 요즘에는 ‘노중장년존’이 생기기도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꼴불견을 일삼았으면 그럴까 싶어 씁쓸하다. 노키즈존, 노펫존, 노중장년존이 늘어나는 이런 세태를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세분화되고 세상이 점점 마이크로화 되는 트렌드의 하나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김난도, 트렌드코리아 2023).
'방투어'를 마치고 들어간 사우나 탕의 물 온도가 너무 낮아 아쉽지만, 넓고 쾌적하고 적당한 조명이 갖춰져 있어 탕 속에 앉아 있노라면 심신이 느긋해진다. 조명의 디테일은 사람과 사물을 돋보이게도 하고, 반대로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감추어 주기도 한다. 옆 샤워 부스에서 물이 튀거나 복작거리지 않은 점도 아주 좋다.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사우나가 집 근처에도 있었다. 나의 최애 장소이던 스포츠센터였다. 운동 시설과 사우나 시설이 호텔급으로 잘 갖추어져 있었고 연회비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며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이용하고 있었는데 경영난을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PT 트레이너 말에 의하면 회원 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픈 초기 할인 회원권을 남발했고, 가격 책정을 낮게 잡아 적자가 누적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이유 외에, 내가 생각하는 그 스포츠센터의 폐업 원인이 있다. 젊은 층의 유입을 끌어내지 못한 타기팅 오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던 일부 유별난 고령 회원들로 인하여 좋지 않은 입소문이 난 것은 혹시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이 스포츠센터 사우나에는 유독 유별난 사람들이 많았다. 자주 다녔기에 그런 환경에 자주 노출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몇몇 사례들을 적어보려 한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좀 더러울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남성을 특별히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여자 사우나에는 들러갈 수가 없으니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뿐이다.
첫 번째 사례는 '스킨로션 들이붓기 신공'이다. 머리와 얼굴의 경계가 모호한 그는 비치된 스킨로션을 이마 위에 대고 들이붓는다. 보통의 경우 손바닥에 적당량을 따른 다음 얼굴에 펴 바르는 바로 그 스킨로션을 말이다. 병에 담긴 양의 삼분의 일은 족히 넘었을 만큼 들이붓고 나서야 얼굴과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를 문질러댄다. 그러고는 본인의 효율적인 행동에 만족한 듯 거울에 이쪽저쪽을 비쳐본다.
다음으로 '냉온탕에 동시 담그기 기술'이다. 냉탕과 온탕의 경계 칸막이에 드러누워 한쪽 팔다리는 냉탕 쪽에, 다른 쪽 팔다리는 온탕 쪽에 담그고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물론 목욕탕 안이므로 다 벗은 상태이다. 무슨 침대 과학도 아니고 30cm가 채 안 되는 경계석에 흔들림 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샤워기 아래에서 명상하기'는 합장만 하면 거의 도 닦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샤워기 물을 최대한으로 틀어 놓고 그 아래 가부좌에 팔짱을 끼고 앉아 물을 맞는다. 마치 폭포수 아래에 앉아 있는 듯 태연자약하다. 대체 그는 그 미끌미끌한 맨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건 마니아'도 빠질 수 없다. 기본적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건처럼 두른다. 건식이나 습식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수건에 찬물을 적셔 손에 들고 들어간다. 때를 밀 때는 동그란 간이의자에 한 장을 깔고 앉는다. 매번 새로운 수건이다. 그렇게 목욕이 끝나고 나오면 우선 발밑에 기본 한 장을 깐다. 다른 한 장으로 몸에 물기를 닦는다. 지금까지 그가 사용한 수건의 총개수는?
이번에는 비위가 상하는 좀 더러운 이야기이다. 계속해서, 정말이지 계속해서 가래침을 뱉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카아악~퇘!"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골이 흔들려 십리쯤 도망가고 싶다. 화장실에서 소변보면서 소변기에 가래를 뱉는 사람 못지않게 더럽다. 아무 데서나 다리를 드는 강아지처럼 영역 표시라도 하는 건가? 이 가래침 대마왕은 샤워하다가 배수구 구멍에 소변보는 사람, 탕 안에 앉아서 발가락 사이 때 파는 사람과 분명 호형호제하는 사이 일 것이다.
드라이어의 용도를 아주 다양하게 활용하는 아이디어 맨도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드라이어는 머리칼을 말릴 때 사용한다. 하지만 그걸로 온갖 군데에 다 들이댄다.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 그리고 짐작하시는 그곳에도. 그렇게 쓸 곳에 다 쓰고 나서도 결코 끄지 않는다. 드라이어를 작동시킨 채 선풍기 반대편에 눕혀놓고는 '우냉풍, 좌열풍'의 맞바람을 즐긴다.
자신이 쓴 물건의 뒷정리 같은 하찮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분도 있다. 바로 옆에 수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한 수건이나 운동복은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 두고, 사용한 화장품 병뚜껑은 닫는 법이 없으며, 뽑아 쓴 휴지는 뽑을 때처럼 휙 날려 버린다. 물론 사용한 선풍기를 끄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집에서는 어떨까 무척 궁금하다. 집에서도 이러면 같이 사는 분이 참 힘들겠다 싶고, 만약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다면 대단한 이중인격자임에 틀림이 없다.
'쭈쭈바'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줄 알았다. 치약 튜브를 '입에 물고' 치약을 눌러 짜 입에 머금은 다음, 다시 치약 튜브는 내 동댕이치고 보무도 당당하게 유유히 사라진다. 양치질하러 가는 것 맞겠지? 아마도 그 사람은 손을 장식품으로 달고 있거나 아니면 아껴서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좀 무서운 경우도 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이빨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태닝을 했다. 좀 이상하다 싶은 시선을 자주 느꼈는데 그러다 한 번은 딱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그윽한 표정과 묘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용하는 시간대를 다른 시간으로 바꾸었다.
그만하자.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편이 갈릴 때가 되었다. '나도 봤다'거나 '공감한다'거나 '뭐 그런 걸 가지고 유난을 떠느냐' 또는 '참 유별나다' 등등.... 해서 이 정도로 멈추기로 한다. 이 사우나에는 유독 연세가 많으신 영감님들이 많았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얘기한 유난스러운 일들이 그분들과 적지 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 대체 사우나에서 뭘 하라는 거냐고? 사우나에서는 그냥 몸을 씻고 마음을 씻자. 다른 이상한 짓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