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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an 13. 2023

무덤 앞에 막걸리 한잔씩?

관계의 유통 기한

1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하지만 그 관계의 이유와 원인 즉,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관계의 유통 기한이 달라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익을 전제로 한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익을 동기로 만들게 되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관계는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으면 끝나게 된다. 기대하는 것이 없으면 연락이 소홀해지고 점차 만나는 횟수도 줄어든다. 바쁘다고 핑계를 대 보지만 진실은 '별 볼일 없어진' 그 사람이 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에게 잊힌 사람이 된다.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해 보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일뿐이다. 물론 한 번의 좋은 관계를 평생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보편적으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이다.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가 궁금해져 핸드폰을 들여다보지만 시간과 날짜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이다. 어쩌다 오는 전화나 문자는 십중팔구 스팸이다. 어느새 나도 잊혀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도 정리하지 뭐. 하나씩 둘씩 전화번호부를 지우다 보면 저장된 전화번호 개수가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서운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인 것을 어쩌겠는가.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턱이 닳고, 정승이 죽으면 개가 장사 지낸다고 하지 않는가.


2

관계의 허망함을 통감하게 된 경험이 있다. 현직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다. 협력 업체에서 가짜 상품을 납품한다는 익명의 제보가 있어 해당 업체에 방문 조사를 나갔다. 제보는 수입한 상품을 추가로 가공하여 가격을 세 배 이상 부풀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실무 책임자 자격이었고 감사팀 직원 한 명과 함께 불시에 점검을 나갔다. 사장실에서 마주한 협력사 사장은 담담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오히려 붙임성 좋고 수다스러운 타입인 그 회사 영업팀장이 좀 과장되고 경직된 모습이었다. 제조 공장, 보관 창고를 돌아봤지만 별다른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압수수색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한계는 있었다.


그런데 현장 조사를 다녀온 지 일주일쯤 지나서 협력사 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회사 앞으로 갈 테니 잠시 만나고 싶다고, 따로 내게 할 얘기가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만나서 얘기하겠다고 했다. 


회사 근처 카페의 한쪽 구석 자리에 사장과 팀장이 앉아 있었다. 팀장은 다른 때와 달리 노타이 차림에 낯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얼굴이 벌겄게 달아올라있었다. 사장은 불안한 눈 빛으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사람들 뭐 하자는 거지? 돈 봉투라도 건네줄 작정인가? 만약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자백하는 것일 텐데?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김 팀장, 말씀드리지?"

"저... 사실은 그거... 제가 제보드린 사람입니다."


사장이 고개를 반쯤 돌려 힐끗 쳐다보자, 팀장이 코 끝을 몇 번 긁적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커피 잔을 바라보고 있었고 목소리는 며칠 만에 처음 말하는 것처럼 목에 걸려 있었다. 


팀장이 사장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경쟁 업체에서도 흔히 하는 수법이라면서, 그렇게 하면 가격을 높여 받을 수 있고 워낙 아이템 종류가 많기 때문에 걸릴 확률이 높지 않다고 안심시켰다. 사장은 즉답을 피했고, 팀장은 이를 암묵적 동의로 이해했다. 


팀장의 예기치 못한 움직임에 심란한 며칠을 보낸 사장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을 불러 작업을 중단하고 이미 만든 것이 있으면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는 듯하던 문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노크 소리가 났는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큰 소리로 들어오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사장실에 들어온 사람은 팀장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서서 사장이 앉아 있는 의자 쪽으로 절반쯤 몸을 돌리고 손을 앞으로 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섰다. 평소라면 그 책상 모서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면서 짝다리를 짚고 있을 그였다. 이 작은 변화를 모르는 척 사장이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흘리자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장님, 저... 제가 돈이 좀 급하게 필요합니다."

"무슨 얘기야? 갑자기 무슨 돈?"

"생각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 회사에서 가짜를 제조한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놀란 사장이 소리쳤다. 


"뭐라고? 무슨 말이야! 그건 중단하라고 했잖아?"

"폐기하기가 너무 아까워서 제가 일부를 이미 납품했습니다."


개선된 KPI로 입증해 보이겠다는 자신의 야심 찬 계획에 대해 사장이 끝내 거절하자 팀장은 크게 실망했다. 나쁜 짓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나? 경쟁사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지? 사장은 요즘 들어 왜 내 말을 자꾸 무시하는 거지? 회사를 걱정해서 제안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신뢰도 잃고 기회도 잃었다고 생각했다. 10년을 함께 쌓아온 어떤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꼭꼭 누르고 있던 어두운 생각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급기야 사장에게 '빅엿'을 먹이기로 결심하고 익명의 투서 써서 보냈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문제가 표면화되면 경쟁 업체도 더 이상 가짜 상품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막상 조사가 나오자 겁이 덜컥 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참담한 결과를 피해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직서를 제출하기 위해 사장실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최소한의 양심 아래 붙잡혀 있던 악마가 그를 덮쳤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먼저 내뱉은 것이었다. 물론 익명의 투서를 자신이 보낸 사실은 끝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사장이 팀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얼굴에 여드름이 숭숭한 어린 친구였다. 뭐든 시키면 그 이상을 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예뻐서 때로는 자식처럼 대했고 때로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야단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었다. 이제는 제법 경영에 대한 개념도 생긴 것 같아 뿌듯하고 든든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한 바가지쯤 쏟으며 긴 대화를 마쳤고, 사장은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를 걸었다. 이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선처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조사 결과 다행히 실제로 납품이 진행되지는 않은 것이 확인되어 그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으니 앞으로 품질 관리에 더 신경 써 달라는 당부를 했다. 만약 내가 문제 삼았다면 그 회사는 납품이 막히게 되고 결국 도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의자 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쳐 앉은 채 양손 손바닥을 일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여러 번 머리를 숙이면서 사장이 말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나중에 무덤까지 찾아가 막걸리 한 잔씩 올리겠다고...


하지만 내가 회사를 떠난 이후 더 이상 그분한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무덤에 들어가면 그때 찾아오려는 걸까? 어느 시점인가 그분의 연락처는 내 전화번호부에서 지워졌다. 아마 그분도 내 번호를 지웠을 것이다. 무덤 속에서 막걸리 한 잔 얻어먹을 사람이 없어져서 서운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 마음이다.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그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슬프다.


3

그러면 이렇게 합리적 의지에 의하여 결합되고 인간관계가 수단적이며 일시적이고 공식적인 집단의 종말은 본질적으로 그렇다 치고, 인간의 자연적 의지에 의해 형성된 집단으로 다분히 감정적이고 전인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비공식적 집단 속의 관계는 어떠할까?


학교 친구나 회사 동기 같은 사이도 머리가 희어지면서부터는 관계 유지가 꽤나 어려워진다. 나부터도 점점 친구 모임에 잘 나가지 않게 된다. 만나면 같은 자리에서 두세 시간을 입담으로 보낸다. 원래 이렇게 말들이 많았던가?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레퍼토리가 늘 똑같다는 사실이다. 


딸이 어느 학교를 다닌다거나, 아들이 어느 회사에 떡 하니 입사했다거나, 둘째 아이가 무슨 어려운 자격증을 땄다거나, 자식 자랑 삼매경이다. 마치 그걸로 서열을 정하려는 듯하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화제는 현직 시절의 '라떼' 이야기로 넘어간다. 각자 잘 나가던 그 시절이 그리운 듯 쩝쩝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사업 계획'을 발표한다. 거기에 몇몇이 맞장구를 치고 의기 투합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염불이고 또 그렇게 진짜로 돈을 합쳐서 시작하는 동업은 파국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단 동업 관계에 들어서고 돈이 개입되면 서로의 뜻이 처음처럼 맞지 않는다. 앵커링 효과 때문이다. 자기 경험과 지식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사람끼리 유연성을 확보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대화가 이어지면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고는 계속 들어주기가 힘겨워진다.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하면 자칫 다 늙어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입만 살아있는' 시간을 몇 번 경험하면 더 이상 그 모임에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취미 생활을 전제로 하는 관계는 좀 더 어중간한 양상을 띤다. 


아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골프를 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그런 생각을 할리는 없지만 '누구는 일하는데, 누구는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다.'라는 양심의 가책이 발목을 잡는다. 한 번 라운딩 할 때마다 수십만 원씩 드는 비용이 좀 과하기도 하다. 


내가 모임에 잘 나가지 않자 프로 골퍼 출신 지인이 주관하는 최고경영자 골프 스쿨이나 회사 입사 동기 골프 모임인 '공치기'에서 몇 번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그러더니 이제 아예 연락도 안 한다. 서로 볼 일이 없어졌다. 단톡방의 난무하는 대화 속에서 나는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다.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았지만 차마 단톡방에서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골프라는 매개를 놓는 순간 이렇게 관계에서도 이탈하게 된다. 티샷 한 공이 그린을 벗어나 러프 속으로 빠져들어간 느낌이다. 우리는 19홀 뒤풀이 술자리마다 '포에버(fover)'를 목청껏 외치며 건배하던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모임에 나가지 않는 내 탓이지 누구를 원망하겠나.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계륵인 것이다.


등산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북한산에 오른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을 거쳐 구기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는 약 10km이며 휴식 시간 포함해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정상에 올라가면 잠시라도 세상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등산이 주는 이 카타르시스는 느껴본 사람은 다 안다.


산에 오르다 보면 줄줄이 열을 지어 오르는 등산 동호회 일행과 맞닥뜨리거나, 등산로 입구에서 동그랗게 모여 서서 준비 운동을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갑자기 이게 부러워서 ***산악회에 가입한 적이 있다. 혼자가 아닌 집단에서 얻어지는 장점들이 분명하게 있었다. 특히 혼자라면 주저했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여성 회원 두 명이 합류하면서부터 이 정립된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 모임에 관한 주관적 경험이고 썩 유쾌한 얘기가 아니라서 자세한 내막은 공개하지 않겠다. 여성 회원 두 명을 두고 남성 회원 십여 명이 앞다투어 벌이는 행태는 단순한 호의를 넘어서 거의 애정 쟁탈전처럼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언행들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회장이라는 분과 집행 위원이라는 분 까지 나서서 홍이점( 紅二點) 여성 회원에 매달려 다니는 꼴이라니. 나 혼자 유별난 건 아니었는지 회원들 몇 명이 줄 탈퇴했고 나도 그 산악회에서 탈퇴했다. 그 이후에는 그냥 원래대로 혼자서 산행을 한다. 세상 뱃속 편하다.  


4

살면서 내가 겪어본 몇 가지 유별난 관계의 종말에 대해 얘기했다. 보행에서 자유로운 손과 다른 사람과 힘을 합칠 수 있는 관계 성립은 인류 문명 발달의 근간이었다. 누구도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관계는 결국 유한하다. 중요한 점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최대한 오래 지속시키는 것과 좋지 않은 관계는 그 인연의 끈을 속히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 인생을 좋은 흐름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나이가 들고 그럴만한 때가 되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한창 사회성이 중요하고 커넥트에 치중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뒤통수를 가격 당하는 일이 없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이다.


좋은 인연,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유통 기한을 늘리고 또 종말을 맞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끝까지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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