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by 한성범

5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교실입니다.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 보고, 해결 방법도 찾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한 아이가 일어섰습니다.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울먹입니다. 순간 교실은 정적이 흘렀고, 저도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말없이 아이 어깨만 토닥였습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날 오후 아이와 함께 명상 숲을 걸었습니다. 공부가 힘들다고 합니다. 몇 개씩 다녀야 하는 학원이 버겁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해보았니?”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듣지 않는답니다. 참으라는 대답만 돌아온답니다. 오늘 학원 성적표가 오는 날인데, 엄마 꾸중을 또 들어야 한답니다. 엄마가 사라지면 좋겠답니다.


요즘 초등학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호기심 많은 초롱초롱한 눈빛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요’라는 무기력 눈빛입니다. 선생님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께 서슴없이 욕설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심해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번 아웃이 된 걸까요?


번 아웃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에너지가 소진되어 무기력, 우울증 등에 빠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번 아웃에 이르게 했을까요? 아이들의 번 아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뇌 과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뇌는 단기 스트레스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뇌 과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뱀이 나타나면 재빨리 도망가는 것입니다.


반면 장기 스트레스는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구체적인 예가 공부입니다. 몇 년 동안 공부라는 장기 스트레스에 노출된 인류는 최근 몇 세대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공부 등과 같이 장기적인 스트레스 유발 조건에서 살아 본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유전자에는 장기 스트레스를 견디는 유전자 설계도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번 아웃 된 아이들도 많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반짝이는 배움 별을 닮은 아이, 품성이 반짝이는 감사 별을 닮은 아이, 관계가 반짝이는 사랑 별을 닮은 아이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학교생활은 즐거움으로 성장으로 행복으로 이어주는 소중한 사다리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요? 아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저는 한 학교에서 8년을 학교장으로 지냈습니다. 유치원을 입학한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8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학부모님과 면담도 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성공과 실패 경험이었습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듯이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성공과 실패의 반복입니다. 배움에서 성공한 날도 있고 실패한 날도 있습니다.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고학년이 되어서 번 아웃 된 아이들은 뚜렷한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실패 경험이 누적된 아이들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유치원에 입학해서 싸움, 정리 정돈 등으로 매일 꾸중을 듣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유치원 때의 습관을 고치기는 어렵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꾸중을 듣는 일이 반복됩니다. 실패 경험이 누적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감,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며, 고학년이 되면 배움에서 번 아웃 되는 악순환 고리입니다.


악순환 고리를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공 경험이 많아지면 됩니다. 성공 경험이 많아지면 자신감, 자존감 상승으로 이어지며 배움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성공 경험을 다른 말로 ‘아! 내가 해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입니다. 이 성공 경험의 누적 정도에 따라 번 아웃 된 아이도 될 수 있고,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도 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해냈다.’라는 성공을 경험할 때 신체에서 분비되는 대표적인 화학 분자는 ‘도파민’입니다. 감정, 의욕, 보상, 운동 조절 등에 관련되는 분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파민의 특성을 대표하는 단어는 ‘갈망’입니다. 예를 들어 카페 앞을 지나면 커피가 마시고 싶고, 홈쇼핑 진행자의 마지막 10분이라는 말에 결재 버튼을 누르고 맙니다.


배움도 그렇지요. 책을 보면 빨리 읽고 싶고, 수학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도 도파민 덕분입니다. 결국 ‘아! 내가 해냈다.’가 배움을 좋아하게 만듭니다. 배움에서 ‘아! 내가 해냈다’라는 경험을 하게 되면 커피를 찾듯이 배움을 갈망하게 됩니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고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수학 시간이 기다려지고, 질문거리가 우후죽순 솟아납니다.


‘아! 내가 해냈다’라는 경험이 배움을 갈망하게 만들고, 그 갈망을 통하여 배움이 성장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아! 내가 해냈다’의 경험을 배움을 갈망하게 만드는 ‘배움 도파민’이라고 정의합니다.


배움 도파민 = 배움을 갈망하게 만드는 화학 분자


이 글은 교직 생활 35년을 정리하면서 유치원, 초등학교 학부모에게 전하는 저의 간절한 메시지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라도 해서 그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펜을 들었습니다. 교직 생활 35년의 경험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자녀를 바르게 성장시킨 학부모님의 목소리도 들었고, 훌륭한 동료 선생님들의 지혜도 모았습니다.


‘아! 내가 해냈다.’의 경험을 어떻게 하면 맛볼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배움 도파민을 춤추게 하라’라는 주제로 우리 자녀들의 배움 성공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