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보다 '기다림'

by 한성범

주말 오후, 사무실에서 원고 작업 중이었습니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꼬마 아이가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얼굴도 예쁜데 인사도 잘합니다. “몇 살 먹었어요?” 손가락 4개를 펴면서 활짝 웃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를 따라 학교에 놀러 왔습니다. 엄마는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장구를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TV에서 장구 치는 모습이 나왔는데, 아이가 손장단을 따라 하드랍니다. 아이가 장구를 배우고 싶어 했답니다. 네 살 아이가 장구를 칠 수 있을까?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아이를 따라 음악실을 향했습니다. 엄마는 선반에서 장구 가방을 천천히 내렸습니다.


장구를 치기 위해서는 가방 지퍼를 열어야 합니다. 이 떼 돌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아이가 장구 가방을 열려고 합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렴.” 엄마는 장구 가방을 아이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이는 장구 가방의 지퍼를 만지기 시작합니다. 지퍼를 당겨보지만 쉽게 열어지지 않습니다. 네 살 아이 손 근육으로는 무리다 싶었습니다.


‘엄마가 도와주지’ 안타까웠습니다. 아이 고집도 대단합니다. 지퍼를 힘차게 당기기를 반복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지퍼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와! 우리 아들 잘하네. 좀 더 세게 당겨보렴” 엄마의 응원 열기도 점점 높아집니다. 드디어 지퍼가 활짝 열렸습니다.


아이는 두 팔을 벌리며 엄마에게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볼에는 미소가 통통거리며, 옴 몸의 근육들이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눈망울에는 자신감이란 보물이 반짝거립니다. 단지 장구 가방 지퍼를 열었을 뿐인데, 조금 전 보았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한 뼘이 아니라 한 아름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낑낑대다가 장구 지퍼가 열리는 순간, 아이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요? 언어로 설명이 어렵지만, 가슴이 부풀어 올라 ‘펑’하고 터질 것 같은 기쁨을 맛보았을 겁니다. 내가 이것을 해내다니 놀람도 있었겠지요. 이것을 ‘아! 내가 해냈다’라고 표현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이루어 냈을 때 감정적 느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공 경험이지요.


아이 엄마에게 질문했습니다. “다른 일도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려 주나요?” 그렇답니다. 밥을 천천히 먹어도 기다려 주고, 신발도 스스로 신도록 기다려 준답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은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해결사 엄마가 아니라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그리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죽기 전 집필한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어느 봄날, 그는 정원에서 우연히 나비의 누에고치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다가가 보니 고치의 한쪽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나비가 막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나비는 아주 천천히 그 작은 입으로 고치 집을 헤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비가 밖으로 나오기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릴 것 같았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비가 빨리 나오도록 누에고치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온기를 받으면 나비가 한결 쉽게 빠져나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입김의 따뜻함을 받아 얼른 고치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나오자마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손바닥 위에서 죽어버렸습니다. 나비가 고치 집을 빠져나오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급함이 나비를 죽게 만든 것이죠.


생각해 보면 나를 정말 아꼈던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치 집에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말없이 기다려 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런 기다림은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배려와 존중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소망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망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하나 필요합니다. 소망으로 이어주는 사다리입니다. 그 사다리 이름은 ‘아!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입니다. 그 성취감이 ‘아! 나도 할 수 있겠네.’라는 자신감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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