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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Oct 20. 2020

내 안의 감정 가족

살아오면서 의식과 무의식에 기록된 경험에 따라 감정 가족은 몸집 크기가 다릅니다. 어떤 감정은 산처럼 매우 크기도 하며, 간장 종지 같은 감정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집이 매우 큰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합니다. 불평이라는 몸집이 크면 불평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감사라는 몸집이 크면 감사라는 눈으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핵심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사람들 대부분이 두려움, 화, 우울 같은 감정의 몸집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감사, 평화와 같은 감정의 몸집이 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부터는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면서 ‘풍암 저수지’라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풍암 저수지를 구성하는 것은 물뿐이 아니겠지요. 물속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잉어와 같은 큰 물고기도 있고, 송사리처럼 작은 물고기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풍암 저수지’의 가족입니다. ‘풍암 저수지’라는 이름은 그 가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월계초등학교’입니다. 나의 마음에도 감정 호수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불안, 두려움, 열등감 등 감정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434명의 감정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감정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 이름이 ‘나’라는 이름입니다. 434명의 감정 가족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한성범’입니다.


434명의 감정 가족에는 먼 원시인류가 보내준 감정이 있습니다. 두려움, 열등감은 먼 원시인류가 물려준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감정을 물려주기도 합니다. 부모가 우울하면 아이들도 우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태어나는 감정도 있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쪄서 매우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감정 단어를 ‘몽실몽실’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만들어진 감정 가족입니다. 434명의 감정 가족 중에 몸집이 큰 가족은 대부분 먼 원시인류가 보내온 감정입니다. 불안, 두려움, 화, 우울 같은 감정들입니다. 그 감정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안, 두려움, 화, 우울 등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나의 감정 가족 중에서 가장 큰 형님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입니다. 감정의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생명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엄마 역할을 합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항상 보살핍니다. 아픈 곳은 없는지 아이의 표정을 살핍니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기도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모를 생존 위협에 항상 대비하게 합니다. 술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잃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젊은 시절에 돈을 낭비하면 노후가 걱정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생존에 큰 위협이 닥치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화’라는 얼굴로 나타납니다. 영화 ‘안시성’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당나라 대군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아내가 매일 늦는 남편에게 화를 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 속에는 행복한 가정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친구에게 화라는 감정을 들이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 이유입니다. 두려움과 화는 서로 다른 감정 형제이지만 따지고 보면 한 몸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24시간 끊임없이 일하고 또 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면서 구박을 합니다. ‘콩쥐팥쥐’라는 전래동화가 있습니다. 착하고 예쁜 콩쥐가 계모와 이복동생 팥쥐에게 구박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두려움이나 화라는 감정은 콩쥐입니다. 나의 생명을 지켜주고, 나의 발전을 도와주는 착하고 예쁜 감정입니다. 그런 예쁜 감정이 나쁜 계모를 만나서 살고 있습니다. 두려움, 화라는 감정은 나쁜 것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부모님,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고, 자기계발서가 알려주었습니다. 나쁜 계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두려움은 사람에게 해로운 감정이야.” 두려움의 형제인 화도 구박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단다. 왜 나타나고 그러니!”    


감정이 구박을 받으면 반항심이 생깁니다. 감정들은 모두 착한 팥쥐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억누를수록 더 커집니다. 필자는 출렁다리만 만나면 온몸이 얼어붙습니다. 한 발자국도 옮겨지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출동한 것입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두렵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건너가는데” 하지만 몸은 점점 더 얼어붙습니다. 구박당한 두려움이 더 크게 반항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박의 반대는 사랑입니다. 두려움을 사랑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사랑한다는 것은 풀꽃을 살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가 정답입니다. 두려움이 내 몸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두려움이 내 몸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오랫동안 보아야 합니다. 


두려움이 내 몸 어디에 있을까요? 자세히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두려움, 화, 슬픔 등의 감정이 나타나면 내 몸 어디에 존재하는지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의 의식을 동그란 모양의 돋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돋보기로 나의 신체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얼굴, 어깨, 가슴, 배, 다리로 내려갑니다. 의식이라는 돋보기로 두려움을 찾아보는 순간,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져버립니다.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나면 의식이라는 돋보기로 나의 신체를 들여다봅니다. 화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봅니다. 머리의 맨 위 가운데에서 시작하여, 옆쪽, 뒤쪽, 위쪽을 자세하게 들여다봅니다. 화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 아니. 머리에 화가 펄펄 나는데 언제 의식이라는 돋보기로 살펴볼 수 있어.” 맞는 이야기입니다. 불편한 감정 찾기라는 방법은 평소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의식이라는 돋보기로 살펴봅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에서 다리까지 돋보기로 살펴봅니다. 꼭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도 됩니다. 아래에서 위로 갈 수도 있고, 가슴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아도 상관없습니다. 나의 감정이 숨어 있을 만한 곳에 의식 돋보기를 가져다 살펴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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