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호구
‘찌질 송’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우연히 TV를 켰습니다. 언제부터일까요? 저의 손에서 TV 리모컨이 떠나버렸습니다. 뉴스도 싫고 드라마도 싫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 분노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가 여기저기에서 보였습니다. 이것이 내가 TV와 담을 쌓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오랜만에 리모컨을 찾았습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검색하다가 신기한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찌질 송’이라는 단어가 리모컨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도대체 ‘찌질 송’이 무엇이지?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화면 왼쪽에는 ‘이십 세기 – 히트송’이라고 붉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뒷골 당기게 하는 찌질&호구 히트송’이라고 작은 글씨가 적혀져 있습니다.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화면에서는 김민우의 ‘사랑일뿐야’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나에게 묻지만, 대답하기는 힘들어.’ 내가 좋아하는 ‘사랑일뿐야’가 찌질 송이라고. ‘찌질’의 사전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태도가 너무 소심해서, 하는 짓을 보면 답답한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제 ‘찌질 송’의 의미가 조금씩 다가옵니다. 소심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남자의 가슴앓이를 담은 노래를 말합니다. 용기가 부족한 남자들의 사랑 노래입니다. 사랑하면 당연히 용기를 내서 고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찌질’하다는 사회자의 해석을 들었습니다. 약간 씁쓸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찌질 송의 순위를 알아볼까요? 찌질 송 3위는 구창모의 ‘희나리’입니다. ‘희나리’는 마르지 않는 장작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맞아. 찌질 송이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주고 죄인처럼 다가서지 못하는 남자는 찌질이가 틀림없습니다.
2위는 김형중의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유희열씨 곡으로 유명합니다. 이 노래 후반부는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늘 너를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너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내 몫이다고. 가사를 읽다 보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휴 바보. 이 애는 ‘호구’입니다.
1위는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결혼식 날, 남자의 순정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몰랐었어 니가 그렇게 예쁜지. 웨딩드레스. 하얀 네 손엔 서글픈 부케 수줍은 듯한 네 미소. 지금 보니 네 옆에 그 사람은 널 아마 행복하게 해줄 거야.’ 아니 옛 애인 결혼식 날 이게 무슨 짓입니까?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합니다. 이 애는 호구이면서 찌질이입니다.
그런데 어쩌죠. 나는 지금 김형중의 ‘좋은 사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가사를 외워 봅니다. 따라서 불러도 봅니다. 나는 뒷골 당기게 하는 찌질&호구 히트송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