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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Aug 07. 2021

수건 개기

수건 개기     


우리 집에서 나의 의무 중 하나는 세탁이다. 가족들이 사용한 옷, 수건 등을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 시키는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결혼 전, 학창 시절에 세탁기를 한 번이라도 돌려보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결혼과 동시에 이 일을 쭉 맡아서 이어오고 있다. 달라진 나의 모습에 우리 어머님은 서운하셨을까? 기뻐하셨을까?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 없다.     


세탁 일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수건이다. 건조기에 넣기는 쉽지만 수건 개기가 쉽지 않다. 전에는 예쁘게 수건을 개지 못해서 아내에게 꾸중 듣기 일쑤였다. 아내의 시범을 여러 번 보아야 했다. 일단 수건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가로로 두 번 접은 다음 돌돌 말면 수건 개기 완성이다.     


나는 샤워 시 수건 하나만 사용한다. 반면 아내와 딸은 수건 2개를 사용한다. 내가 수건 하나만 사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탁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딸과 아내가 수건 2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수건 하나만 사용한다. 아빠의 힘듦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대충 씻는 것일까?     


이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아내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가끔 아내와 수건 개기를 함께한다. 아내의 돌돌 말아진 수건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그럴까? 우아한 곡선미를 살려서 돌돌 말아야 하는데, 찌그러진 깡통처럼 수건을 개고 있다.     


아! 나는 수건 개기의 전문가이다. 내가 갠 수건을 바라보면 흐뭇하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수건들의 키가 같다. 그 통통함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예쁘게 갠 수건을 사용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아빠의 사랑이 수건에 담겨있음을 알고는 있을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결혼 전 나도 수건을 사용하면서 어머님의 감사함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수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학교가 어른거린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잘 개어진 수건이 필요하다. 아이 마음이 아플 때는 보들보들한 수건을 내주어야 한다. 그 부드러운 털로 아이의 상처를 닦아 주어야 한다. 가끔 용기를 잃으면 희망의 노란색 수건을 써 보게 한다. 힘이 날 것이다. 친구와 싸웠을 때는 흰색의 손수건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과의 편지를 써 보게 하면 어떨까?      


그렇다. 교육자의 마음에는 잘 개어진 수건 여러 장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 수건들의 이름을 읽어볼까? 사랑, 봉사, 칭찬, 감사, 인내, 연구, 수고라는 낱말이 적혀있다. 그 밖의 낱말들이 적힌 수건이 손을 들려고 한다. 빨리 마음 수건 서랍장을 닫아버렸다. 교육자에게 필요한 역할들이 너무도 많다. 이래서 선생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을까?    


내 마음 서랍장에는 어떤 수건이 담겨있을까? 서랍장 첫 번째 칸에 욕심이라는 수건이 얼굴을 내민다. 다음에는 불만, 두려움이라는 수건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휴! 이를 어쩌나! 나는 교육자인데. 잠시 수건 개기를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린다. “빨리 수건을 개” 흠칫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누라님 이야기가 아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말이다. 정성을 들여서 수건을 개야겠다. 그 수건에 감사, 사랑, 배려, 도전이라는 낱말을 적어 넣어야겠다. 씻을 때마다 꼭 다짐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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