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재미 삼아 초성 잇기라는 것을 합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ㄸ>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한 번은 명품이 좋아하는 <ㄸ>을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즉 <뜻> <뜸> <땀> <또> <뚝> <때> <똥> <떡> <뜰> <똘> 이렇게 학장이 됩니다. 필자는 이것을 성공을 부르는 <ㄸ> 열 가지라고 합니다.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성공하려면 <뜻>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겠다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뜸>이 들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포기 말고 <또>해보아야 합니다. <똘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뜰> 곳을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살 <떡>을 만들어야 합니다. <똥> 살만큼 힘들어야 합니다. 물론 무슨 이론이나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입니다.
필자가 10가지 <ㄸ>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 <땀>입니다. 다소 보수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땀>을 생각하면 가슴팍 어딘가에서 용기가 분수처럼 쏟아나는 느낌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이름하여 <땀> 사랑입니다. 우리나라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명품 백을 한 개 정도 갇기를 원합니다. 물론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그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 즉 로망이라면 H사 백일 것입니다. 필자는 이 백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백에 숨겨진 사연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가방 하나에 보통 수천만 원이 넘는 이 백은 700조각의 가죽을 2만 6000번의 바느질로 연결해 완성합니다. 백 손잡이는 가죽 7겹을 붙여 만들어서 그만큼 견고합니다. 대를 이어 들어도 별 손상이 없을 정도입니다. 누가 이 가방을 만드는 것일까요? 가죽 학교에서 3년, 공방에서 2년, 총 4만 3000시간 이상 연습 기간을 거쳐야만 공식적으로 가방 제작에 투입됩니다. 그러니까 가방은 누구나 만들지만 명품 가방은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가죽 장인들은 가방의 안감 재단부터 가죽 마감처리 하기, 끝단 염색하기, 손잡이·버클 달기 등을 모두 한 자리에서 작업합니다. 바늘이 들어가는 구멍도 기계가 아닌 송곳으로 뚫고, 바느질의 최종 마무리도 송곳으로 섬세하게 다룹니다. 보통 7~10년 정도 경력자들부터 만들게 되는데 장인 한 명이 일주일에 1개 반 정도 완성한다고 합니다. 가방 하나는 18~22시간에 걸쳐 완성됩니다. 완성된 제품에는 장인의 데스크 번호와 제작된 해가 찍힙니다. 그래서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 고객이 수선이나 부분 교환을 원할 때 그 가방이 제작된 데스크 번호로 배달되는 '평생 책임 제도'로 운영됩니다.
필자가 명품 가방을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니 열광하는 명품 뒤엔 ‘보이지 않는 과정이나 땀’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꼭 가방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가령 우리가 먹는 쌀을 생산하는 과정엔 88번에 걸친 농부 손길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또 최근 들어 기성 양복보다는 맞춤 양복을 선호하는 남성이 늘었다고 합니다. 맞춤 양복 한 벌엔 바느질 2만 5000여 땀이 들어가고 치수를 재고 원단을 고르고 가봉하는 등 최소 2 , 3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즉 장인의 <땀>이 베여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아버지와 아들이 시골 장터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가격으로 장사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아버지가 만드는 만든 짚신이 먼저 팔리고 그리고 나서야 아들의 짚신이 팔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며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빠른 솜씨로 더 많은 짚신을 만들었지만 늘 아버지보다 수입이 적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아들에게 “털.....”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 한 마디를 수십 번 되새기면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 뒤 아버지가 만든 짚신과 자신이 만든 짚신을 나란히 놓고 찬찬히 살피다가 다른 점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짚신에는 잔털이 하나도 없고 마무리가 잘 되어 있는데 비해 자신의 짚신에는 유난히도 잔털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끝마무리가 잘되어 잔털이 없어 발바닥이 아프지 않아 잘 팔렸던 것이지요.
한 여성이 꿈에 그리던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한 터라 매장 관리자 즉 <크루(매장 현장근로자)> 관리하는 일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첫날부터 주어진 일은 화장실과 매장 바닥 청소였습니다. 온종일 청소하고 집에 오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됐습니다. 그녀는 일이 너무 힘들고 자존심이 상해 날마다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상상을 했습니다. 매일 퇴근길에 “내일은 그만둘 거야”라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녀 어머니는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최소한 1년은 버텨라!” 이 말을 위로 삼아 참고 기다렸습니다.
학벌도 스펙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입사 3년 만에 점장이 됐습니다. 학교나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오로지 일로 평가하는 회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점장 때는 교대근무를 나가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자 어머니가 “왜 딸을 집에 안 보내느냐”라고 회사에 전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퇴근 시간도 잊을 정도로 일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녀는 20대 젊은이들이 직업 선택을 앞두고 고민한다면 “재미있는 일을 택하라”라고 조언합니다.
그녀에겐 여러 개의 ‘최초’ 기록이 있습니다. 입사 3년 만에 점장이 된 뒤 1년 만에 지역관리자로 진급했습니다. ‘최단기·최연소 점장’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매장 매니저 출신으로서 첫 여성 임원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신문에 나온 SK 기업 광고 문구를 소개한다. 당시 그 문구를 보고 자못 놀랐었습니다.
▪1985년 첫 에베레스트 - 실패, 대원 둘을 잃다.
▪1988년 두 번째 에베레스트 - 성공, 히말라야 제1좌에 오르다.
▪1997년 세 번째 에베레스트 - 실패, 발가락을 절단하다.
▪1998년 네 번째 안나푸르나 - 실패, 종아리가 부서지다.
▪2000년 첫 K2 - 성공, 14좌를 완등하다.
▪2003년 두 번째 로체샤르 - 실패, 후배 둘을 잃다.
▪2004년 첫 얄룽캉 - 성공, 15좌 완등, 친구 셋을 잃다.
▪2006년 세 번째 로체샤르 - 히말라야 마지막 16좌에 도전한다.
서른여섯 번의 도전 만에 히말라야 15좌에 모두 오른 엄홍길 대장. 그 고통과 공포를 알면서도 왜 또 로체샤르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합니다. 산도, 삶도 용기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허락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사람의 도전은 경외롭습니다.
물론 엄홍길 대장은 이 도전에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 기록을 세웁니다. 세상엔 두 종류 청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80세 청년이고 또 하는 20세 노인입니다. 당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인생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인생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안 되려면 부단히 도전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시든지 <도전> 하지 않으시면 <전도> 즉 넘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