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 국민 중 가장 대표적인 <바보형(?) 인재>를 꼽으라면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을 꼽고 싶다. 다음 글은 고 정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에 중앙일보 김기환 기자의 <“못한다 안 된다” 당신께>라는 글이다. 정주영 회장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편지 형식을 빌어 소개하고 있다. 내용이 좋아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 나, 아산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입니다. 요즘 힘들고 어렵지요. 이해합니다. 그러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는 내 성공담에 “본받자”는 찬사가 이어지면서도 “제아무리 정주영이라도 지금 태어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못한다. 안 된다”며 주눅든 청춘, 어려운 기업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내 평생 성공만 하고 살아온 것처럼 비치지만 결코 아니라오. 나는 실패를 먹고 자랐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네 번 가출한 끝에 1937년 22세 나이로 서울 신당동에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렸지요. 하지만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실시하는 통에 2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40년엔 북아현동에 ‘아도서비스’(현대차의 전신)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창업 한 달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됐습니다. 평소 신용을 쌓은 후원자로부터 돈을 빌려 재기했지만 그마저도 일제가 기업 정비령을 내려 43년 해체됐습니다.
53년은 막막한 해였습니다. 현대건설은 그해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공사를 따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물가가 120배 폭등하면서 건축 자재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습니다. 신용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사를 마쳤지만 일가족 집 4채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 빚 갚는 데만 20년이 걸렸습니다.
개인사에도 곡절이 많았소. 어릴 적 변호사가 되려고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보통고시(지금의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82년엔 비 내리는 한밤중에 홀로 차를 몰고 울산 현대조선소를 순찰하다 바다로 빠졌습니다. 차 문을 부수고 수심 10m가 넘는 바다를 헤엄쳐 나와 살았습니다. 장남은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92년엔 대선에 도전했다 낙마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세무조사에 시달렸습니다. 어떻소. 이래도 내가 성공만 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까.
누구나 스스로에게 닥친 위기가 제일 어려운 법입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도 들기 마련이지요.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거치며 살아온 내 세대와 요즘이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과 실패가 결코 여러분의 그것보다 작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자동차·조선·건설 회사를 일궈온 역사, 여러분도 해낼 수 있습니다.
청춘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 때문에 쓰리고, 기업은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며 구조조정에 한창입니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게 혹 한 가지 배울 게 있다면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도전정신, 그것 아니겠소. 오늘 내가 당신께 남기는 선물이라오. 부디, 도전하시오.>
우물을 잘 파는 한 업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실패한 곳도 그는 곧잘 우물을 파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신기하게 여겼고 결국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우물을 잘 팝니까?"그러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예! 나는 우물을 파는 데 실패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실패한 곳에 잘 불려 다닙니다.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꼭 하나입니다. 나는 아무 곳이나 파지만 물이 나올 때까지 팝니다."
새로운 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도 평균 1만2000번의 실패를 거친다고 한다. 유전 하나를 발견하는 데에도 스물대여섯 번의 탐사를 넘겨야 한다고 한다. 러시아 속담에 "병사여,인내하라. 곧 장군이 될 것이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성공인들의 좌우명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에나 낙담하지 않는다’, ‘끝까지 해낸다’, ‘결코 단념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절대 포기하지 마라’ 라는 뜻이나 매 한가지다.
필자는 인생은 자전거 타기나 매한가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게 되어있다. 자전거를 타는 이가 아무리 자전거 달인이라도 페달을 밟아야 나아가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성공하는 이들은 페달을 밟을 때 생각하는 게 있다. 정 회장처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도전 정신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아무리 자전거 타기의 모든 기술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타보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자전거 타기'를 100년 관찰해도 당신 자신이 100번 넘어지고 다치기 전에는 절대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늘 말했다고 한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바보형(?) 인재들은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질러보자>고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다리는 것이다.
인생은 일단 질러 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