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 교수가 전하는 성공 사 리드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차지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선수 애기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아베베 선수가 당시 세계 신기록을 3분이나 앞당길 수 있었던 건 경기도중 다른 선수가 자신을 추월해도 늘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새로운 비법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비법으로 아베베는 4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어 마라톤을 2연패 한 전무후무한 마라토너가 되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는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마라톤의 비법이 우리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마라톤 경기에는 페이스메이커라 해서 같은 편 선수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리하게 달림으로써 상대방 선수의 기운을 빼 버리는 역할을 맡은 선수가 끼여 있다. 그 페이스메이커의 악의적인 ‘오버’에 흥분해서 장단을 맞추는 마라토너는 결국 후반부에 탈진하고 뒤쳐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번호에는 “느리게 살면 인생이 보인다.”라는 주제를 잡아 보았다.
“느리게 살면 인생이 보인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동료, 자신을 추월한 후배, 카리스마가 번쩍이는 상 사 등의 타인을 의식하는 심리가 때론 동기부여도 되고 승부욕이 솟아올라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정서를 고갈시키고 체력마저 탕진하기 십상이다. 그건 바로 자신의 페이스를 잃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아베베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면서, 쉴 때와 일할 때를 구분해 가며 늘 꾸준하게 달리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 즉 성공한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 말은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 어느 가구회사가 흔들의자 · 침대 · 맥주냉장고 · TV 리모컨 · 전화를 결합시킨 의자를 내놓아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일명 <느림보게으름뱅이 의자>인데 느리게 산다는 게 이렇게 게으르게 산다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실속 없이 바쁜 사람, 한 번뿐인 인생을 부질없이 소모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세상이 변해가면서 이제 경제전쟁은 속도전이나 다름없다.
질문을 하나 하겠다. 1990년대 요구르트 광고에 나오는 불가리아 장수촌 노인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요즘 어떻게 되었을까? “음... 장수하는 분들이 더 많이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곳에 더 이상 장수노인은 없다고 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부터 오래 사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불가리아 농촌도 속도의 흐름 속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시절엔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그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경쟁체제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유를 못 찾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걸까? 휴일과 여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직장인이나 사업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까닭은 주로 ‘언제까지 마치거나 처리해야 한다.’는 약속에 쫓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대개 타인과의 약속이고요. 반대로 ‘언제까지 마치거나 처리해야 한다.’는 약속을 자기 자신과 맺은 사람은 굳이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적절한 시한을 정하여 자기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이야기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전자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뒤 식당을 운영하는 이현진 씨는 대기업 연수원 교육 담당자였는데요. 이 씨의 별명은 ‘바쁘다’였어요. 회사 직원 교육 실무를 혼자 맡은 이 씨는 별명이 ‘바쁘다’로 불릴 만큼 회사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 씨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식당을 냈다. 그런데 이 씨의 하루 일과를 보니까 새벽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전보다 훨씬 더 빡빡 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 씨는 요즘은 하 바쁘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젠 약속 시간에 쫓겨서 속 태울 일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일의 많고 적음이 빠름과 느림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 문제는 관계였다. ‘누가 일의 주도권을 쥐는가!’ 그게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은 읽는 독자 중 감감 이 있는 이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음....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찾는 일이구먼”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당신이 당신 인생에 잡아놓은 근저당설정을 풀어야 한다. 노예가 자기 인생의 전부를 주인에게 저당 잡히듯 사람은 대개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타인에게 저당 잡힌 채 살아가기 일쑤다. 부모 인생의 상당 부분이 자식에게 저당 잡혀 있는 것처럼 소심하고 눈치 보는 부하는 자기 인생을 상사에게 저당 잡힌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필자와 함께 당신 인생의 근저당을 풀어보자.
첫째, 주변을 풀어라. 근저당 설정을 푸는 것은 당연히 주변 정리로부터 시작한다. 육체적 교류는 물론 사랑, 미움, 원한, 동정, 저주, 두려움 등등의 감정 교류를 끊고 맺고 자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둘째, 미래를 풀어라. ‘반드시 노벨상을 타겠다.’처럼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잡은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자신의 미래에 저당 잡히게 되기 십상이다. 아무나 타면 노벨상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본 사람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미래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게 되는 거다. 세상엔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많으니, 안 되는 것이 정상이다.
셋째, 약속을 풀어라. 그러자면 우선 약속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을 남발하는 짓은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남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훌륭한 참모는 보스에게 ‘No!’라고 대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예스맨은 보스는 물론 자기 인생마저 망치기 십상이이다. ‘No!’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실질소득이 들면 행복도 그만큼 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재미있는 조사가 있다. 시카고대학 심리학과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자신의 책 『몰입의 즐거움』에서 “미국의 억만장자는 평균소득을 가진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행복할 뿐이다? 고 주장한 바 있다. 1960년에 비해 1990년대 미국인의 실질소득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자신이 무척 행복하다’ 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은 여전히 30%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이다.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빈곤의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재산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거기에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말이다. 내 인생의 근저당을 풀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잘 유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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