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이런 말을 남겼다.
“It is not the strongest who survive, nor the most intelligent but those who are most responsive to change.”
가장 오래 남아서 생존하는 것은 가장 힘이 센 것도, 아주 영리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변화를 잘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한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광고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신은 의무다. 변신하지 않는 자가 유죄인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변신을 위한 첫걸음은 변화에 잘 대응하는 데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에 대응해서 변신에 이르는 길이 늘 그렇게 엄청난 노력이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남보다 반걸음만 앞서 가도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 예컨대 아래의 일화를 보자.
아프리카 정글 속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한참 가다 보니 팻말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 팻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사자 출연 주의!” 이를 본 A가 걸음을 멈추더니 신발 끈을 동여맸다. B가 말했다. “여보게, 자네가 신발을 동여맨다고 해서 사자를 따돌릴 수 있겠나!” A는 다른 쪽 신발 끈을 더욱 동여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난 자네만 따돌리면 되거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의 성공 경험’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다음 실험은 이에 관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프로 체스 선수와 아마추어 체스 선수에게 프로들의 체스게임을 보여주고 복기를 하게 했다. 프로 선수는 80%를, 아마추어 선수는 33%를 복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엔 그들에게 아마추어 선수들의 체스게임을 보여주고 복기를 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프로 선수는 전혀 복기를 못한 데 반해 아마추어 선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33% 복기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로 선수는 과거의 학습과 경험이 복기를 하는 데 오히려 방해로 작용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근원적 변화(Deep Change)를 하는 데 가장 큰 적은 과거의 성공 경험이다. 근원적 변화를 원한다면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다.’는 마음으로 무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근원적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작업은 아니다. 변화를 시도하는 데에는 언제나 극심한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면, 간단한 실험 하나를 해보자.
두 손을 어깨 넓이로 벌린 뒤 양손을 깍지 끼어보자. 아마 오른손 엄지가 왼손 엄지 위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와는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아주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깍지를 반대로 껴보자. 어떤가? 변화란 늘 이처럼 불편하고, 거북하고, 두려운 것이다. 실패자들은 작은 골목길이나 샛길을 가기 싫어하는 습성이 있다. 이들은 큰 길 즉 대로를 가기를 좋아 한다. 이들이 자주 가는 대로는 이렇다. 바로 <평소 대로, 하던 대로, 있던 대로> 다.
늘 그 자리에만 안주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상황에 떠밀려 변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성공사례를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였는데도 여전히 걸머지고 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뗏목은 버려야지 그것을 짊어지고 가려니 삶이 힘들어 진다." 故 이어령 박사가 주장하는 <뗏목론> 이다.
여기 당신 앞에 달걀이 있다고 치자.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최소한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알을 깨면 달걀 프라이밖에 되지 않는다.
스스로 깨고 나오겠는가? 아니면 남이 깨주길 기다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