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 부족해서 노벨상이 안 나온다고?
주입식교육과 노벨과학상
얼마 전 한강 작가님께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셨다.
축하하는 목소리와 함께, 과학, 화학, 생물 등 이공계 분야에서는 노벨상이 왜 나오지 않을까 다시금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다는 담론은 노벨상 시상 시즌마다 반복해서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이공계 상황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어릴 때부터 행해지는 주입식 교육이 창의성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는 이야기도 흔히 제기되는 주장 중 하나이며, 해외 국가들과 교육 방법을 비교하는 논의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마치 다른 나라에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습 환경이 보장되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는 비약이다. 해외에서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방식이 창의성을 저해시킨다는 비판은 자주 볼 수 있다. 켄 로빈슨(Ken Robinson)은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Schools Kill Creativity)"라는 타이틀의 TED 강연에서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일률적인 학습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한 것은 유명하다.
물론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절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주입식 교육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부터 문제가 있다. 다만 이 문제를 단순히 교육방식 탓으로 돌리지 말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주입식 교육과 창의성의 관계 연구
주입식 교육이 창의성을 저하시키는 지에 대한 여부는 연구는 다양하다. Kohn (2000)의 연구에 따르면 단기적인 시험 성적 향상은 가능하지만 장기적인 비판적 사고 및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방해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거나 실험하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 호기심과 자발적 탐구 의지를 억제시키는 탓이었다.
반대로 어떤 연구에서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높은 성취도를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Stevenson and Lee(1996)의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 학생들은 체계적인 학습법과 반복 학습을 통해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또한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주입식 교육이 단순한 암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기초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탄탄하게 쌓는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주입식 교육에도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
옆 나라인 일본은 대표적인 주입식 교육 국가 중 하나다. 아시아권의 많은 나라들이 주입식 교육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공계 분야에서 꾸준히 노벨상을 배출해왔다.
- 유카와 히데키 : 물리학상 - 중간자 이론 연구
- 이시가와 시노리와 다나카 고이치 : 화학상 - 단백질 연구 방법 개발
- 나카무라 슈지 : 물리학상 - 청색 LED 발명
- 혼조 다스쿠 : 생리학·의학상 - 면역항암제 연구
이처럼 일본은 주입식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창의성과 혁신을 발휘한 연구자들을 배출한 것을 보면 교육 시스템의 단점을 이겨낸 다른 요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기초과학 소외현상
노벨과학상 수상 여부를 단순히 교육 방식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다. 과학 및 이공계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투자 부족도 중요한 요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충분한 자원을 제공받지 못해 연구를 중단하거나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반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와 안정성 부족으로 인해 인재들이 기초과학보다는 취업이 보장된 응용 분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투자를 살펴보자. 2024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높은 편이지만, 이 투자금이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기술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주요 연구들은 대부분 기초과학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방향이 다르다.
노벨상에 과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노벨상 수상은 분명 영예로운 일이지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위의 분석은 한국인들의 창의성 부족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는 담론에 다른 시각을 제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국제적인 상의 수상 여부를 창의성 수준의 절대 척도로 삼을 필요가 없다. 권위있는 국제상 수상의 영예를 안을 만큼 뛰어난 성과를 얻는 것이,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또, 시대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노벨상은 올드해진 부분도 있다. 노벨상 외에도 필즈상, 튜링상, 클라리베이트 인용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들이 존재하기에, 도전할만한 분야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상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우리의 앞 길을 더 잘 닦아나가는 데 힘을 쓰자. 수상자의 스토리나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환경도 참고 정도의 자료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를 이겨나가면 다른 이에게도 인정받는 영예를 안는 날이 올 것이니. 우리도 우리만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