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렘베어 Aug 24. 2022

발톱만 봐도 사자인지 안다

A l'ongle on connaît le lion



발톱만 봐도 사자인지 안다(A l'ongle on connaît le lion).



Ex ungue leonem - 이 속담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인 사자를 조각하게 되었을 때, 사자 발톱만 보고 사자 전신상을 완성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고사(故事)이다. 특출난 사람은 그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기 충분하다는 뜻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쯤엔 남부 유럽에는 사자가 드물게 서식하고 있었다. 기원후로 올라가면 그러한 얘기가 없다. 사자는 프랑스에 서식하지 않았던 동물이지만 '동물의 왕'에 대한 상징과 은유프랑스 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숭상받은 동물 중 하나였다. 


예컨대, 중세 때는 각 나라 군주들에게 '사자'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이 유행하다시피 했다. 잉글랜드 왕국의 두 번째 왕인 사자심(Lionheart) 리처드 1세(1157-1199), 13세기 초 프랑스 왕국의 왕이자 잉글랜드 왕국의 대립군주 사자왕 루이 8세(1187-1226), 플란더스의 로베르 '사자' 3세 백작(1249-1322), 독일 작센 공국의 하인리히 사자공(1129/31-1195), 스코틀랜드의 일리엄 '사자' 1세(1143-1214) 등등.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호전적인 군주 혹은 사자를 나타내는 가문의 수장에게 사자 별명을 붙였다.                        


라마르슈(변경백) 백작령이었던 크뢰즈(Creuse) 주의 상-마르샬 성당 입구 사자상. 중세에 지어진 로만 양식의 성당에서는 문앞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사자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유대교의 심벌이자 절대왕권, 대왕, 신의 권능, 군대 등을 은유하는 사자는 중세 이전부터 각종 귀족 가문과 영지의 문장(블라종=Blason))에 흔하게 사용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페인 국기 속 문장에도 사자 그림이 들어가 있다.


가장 흔한 사자 그림은 아래 문양처럼 측면을 보면서 뒷발로 일어서는 사자(lion rampant)의 문장이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 브랜드 푸조(Peugeot) 로고 역시 이를 모티브로 한다.

좌 : 브라반트 공국의 문장  / 우 : 스페인의 국장. 스페인 깃발에서 볼 수 있다.

왼쪽 그림은 12~16세기경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걸쳐 위치해 있었던 브라반트 공국의 브라반트 공작가 문장이다. 금사자(Lion d'or)는 발톱으로 무장했으며(armé), 혀의 색이 몸 색과 다른(lampassé 또는 langué) 형태이다. 발톱이 달렸다는 것은 장군과 기사 등 군사력을 의미한다.

오른쪽 그림은 현 스페인 왕가의 문양인데, 여기에도 사자가 한 마리 보인다. 문장 방패의 오른쪽 위쪽에 위치한 '금속의 자주색(pourpre)' 사자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던 옛 레온 왕국을 나타낸다. 브라반트의 문장과 또 다른 점은 사자가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 왕관(couronné d'or)을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장에 그려진 사자의 특징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재미있다.




한편, 아프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 사업이 활성화되자, 프랑스인들은 전설 속의 사자를 프랑스에 데려오기 시작한다. 19세기 이후 서커스단에서 사자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몇몇 집에서는 사자를 반려동물로 키웠다.

사자를 반려동물로 키운 사람 중 가장 알려진 이는 <라 프롱드(La Fronde)>의 편집장 마르게리트 듀랑(1864-1936)이다. 1897년 만들어진 <라 프롱드>는 세계 최초 여성 인쇄공/편집인들로만 이루어진 신문사로, 1905년까지 신문을 발간했다. 마르게리트 듀랑 자신은 활동가이자 우아한 스타일를 선두하는 파리의 셀럽이기도 했는데, 자신의 반려사자인 타이거(Tigre)를 함께 데리고 파리 시가지를 산책하여 더 유명해졌다. 

마르게리트 듀랑과 그의 사자 '호랑이(Tigre)'.


프랑스는 2021년 동물학대 근절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곧 사자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공연이 전면 금지된다. 

사자는 멸종위기의 동물이다. 19세기엔 인류가 무식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지성을 가진 80억 현대인들이라면 지구에 2~3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사자를 괴롭히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

https://www.jstor.org/stable/j.ctt1dt00vp 

http://www.blason-armoiries.org/heraldique/ 

https://publications-prairial.fr/frontiere-s/index.php?id=450 

https://fr.wikipedia.org/wiki/Armoiries_de_l%27Espagne 

https://rachelmesch.com/2013/10/11/woman-and-beast/ 

매거진의 이전글 책은 냉정하고도 믿음직한 친구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