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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렘베어 Feb 17. 2023

작품을 통해 장인을 알아본다

A l'œuvre, on connaît l'artisan

작품을 통해 장인을 알아본다(À l'œuvre, on connaît l'artisan).



장인 혹은 작가는 그들이 만든 작품으로써 평가받는다. 또한 작품 속에는 그들의 품성이 드러난. 그처럼, 사람도 행동거지에서 인격과 성격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A carpenter is known by his chips(목수의 재질은 그가 남긴 나무 조각들로 알 수 있다)라는 속담이 존재한다.


먼저, 이 속담은 17세기 라퐁텐 우화집의 <말벌과 꿀벌(Les frelons et les mouches à miel)>이라는 우화 첫머리에 쓰여 있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주인 없는 벌집을 두고 말벌과 꿀벌 사이에 분쟁이 일었는데, 재판관인 쌍살벌은 꿀벌의 벌집 짓는 솜씨가 대단한 것을 보고 벌집이 꿀벌 것이라는 을 간파한다는 내용이다.


더 옛날에는 아르티정(artisan : 장인)이란 단어 대신 우브리에(ouvrier :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À l'œuvre, on connaît l'ouvrier'라고 썼다. 현대에는 우브리에(ouvrier)라는 단어가 육체노동자를 뜻하지만, 중세 시대에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직업인인 장인과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3세기의 성직자 고티에 드 메츠(Gauthier de Metz)가 쓴 책 <세계의 이미지(L'Image du monde)>(1245)에 중세 프랑스어로 위 속담이 인용되어 있다.

"왜냐면 작품으로써 우리는 장인을 알아보기 때문에...(Car par les euvres connoist on l’ouvrier)" 고티에 드 메츠, <세계의 이미지>(1245)


또한, 라틴어에는 이러한 속담도 존재한다.

E cantu dignoscitur avis.
...E plumis avem dignosci, id est e cultu spectari vitam et ingenium hominis.

"노랫소리로 새를 알아본다"
...깃털로 새 종류를 알아채는 것은, 문화를 통해 사람의 삶과 성품을 알아보는 것과 같다.
에라스뮈스, <격언집Adagia> 4.2.21.


밀레(Millet), 테스모포리아(1894-7)


한편,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c. BC 446-386)가 쓴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Thesmophoriazusae)> 속 문장이 속담의 진짜 유래라는 설이 있다.

테스모포리아 축제란 10월에 농경의 신 데메테르를 모시는 행사로, 여성들만이 참가 가능하다. 극은 신화와 실존작가들을 패러디하여 이 축제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극작가 에우리피데스(c. BC 484-406)가 여성을 비하하는 작품을 계속 쓰자 여성들은 분노한다. 화가 난 여성들은 축제 때 그를 죽여버리기로 결심한다. 이를 눈치 챈 에우리피데스와 그의 지인들은 여장을 하고 축제에 잠입하여 여성들을 설득하려 하는데...


극중 초반에 에우리페데스는, 여장을 해도 위화감 제로인 꽃 비극작가 아가톤(c. BC 448-400)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자신의 외양에 딴지를 거는 므네실로쿠스의 태도를 보고 아가톤은 코웃음치며 거절한다. 여기서 위 속담의 기원이 되는 대사가 나온다.

아가톤 : 게다가, 시인이란 게 거칠고 털이 북슬북슬하다니 고약한 취미로군요. 노래를 잘 다룰 줄 알았던 이비쿠스(Ibycus), 테오스의 아나크레온(Anacreon), 알케우스(Alcaeus)를 보세요. 그들은 머리띠를 하고 이오니아의 춤을 추었죠. 그리고 프리니코스(Phrynichus)가 맵시 나는 옷을 입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들어본 적이 없나요?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 또한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작품은 작가 자신의 본성을 담으니까요.

Ἀγάθων: ἄλλως τ' ἄμουσόν ἐστι ποιητὴν ἰδεῖν / ἀγρεῖον ὄντα καὶ δασύν. σκέψαι δ' ὅτι / Ἴβυκος ἐκεῖνος κἀνακρέων ὁ Τήιος / κἀλκαῖος, οἵπερ ἁρμονίαν ἐχύμισαν, / ἐμιτροφόρουν τε καὶ διεκλῶντ΄ Ἰωνικῶς. / καὶ Φρύνιχος, – τοῦτον γὰρ οὖν ἀκήκοας, – / αὐτός τε καλὸς ἦν καὶ καλῶς ἠμπίσχετο· / διὰ τοῦτ' ἄρ' αὐτοῦ καὶ κάλ' ἦν τὰ δράματα. / ὅμοια γὰρ ποιεῖν ἀνάγκη τῇ φύσει.

아리스토파네스,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 line 159-167.


...잠깐, 작품에 작가의 품성이 아니라 작가의 외모가 드러난다는 얘기였단 말인가.



참고자료 :


장시은. (2018). 테스모포리아 축제와아리스토파네스의 『테스모포리아주사이』. 인문논총, 75(3), 53-78. 10.17326/jhsnu.75.3.201808.53 

아리스토파네스 -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

https://remacle.org/bloodwolf/comediens/Aristophane/assemblee.htm, http://classics.mit.edu/Aristophanes/thesmoph.html 

밀레, 테스모포리아(1894-1897)

https://en.wikipedia.org/wiki/Thesmophoria#/media/File:'Thesmophoria'_by_Francis_Davis_Millet,_1894-1897.jpg 

Gauthier de Metz, <L'Image du monde, en prose>(1245), 19p. https://gallica.bnf.fr/ark:/12148/btv1b52505448t 

에라스뮈스, 아다지아. http://ihrim.huma-num.fr/nmh/Erasmus/Proverbia/Adagium_3121.html 

라퐁텐 우화 Livre I, fable 21. http://www.la-fontaine-ch-thierry.net/frelonsm.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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