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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달 Mar 06. 2024

나르시시스트를 위한 심리학

"미움받을 용기 2" (2016)


  

  미움받을 용기 2권은 '나르시시스트' 즉,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은 교육자가 학생을 지도하는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서술하면서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우리를 행복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정말 필요하다. 이들은 '사랑'을 모른다. 있는 그대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식과의 사랑에서도 '대가'를 바란다. 즉,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조차 이해타산을 따진다. 


나르시시스트 입장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충고는 충격일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이 분리되지 못한 세계에서 사는 자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타인을 자신의 확장, 연장, 도구로 쓰는 자들인데 그 좋은 것을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존경, 존중을 모른다. '인간이란 세상에 유일 무이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모른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신'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런 존경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오직 자신만이 중요한 세상에 사는 나르시시트들에게 '공감'이란 사치다.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상상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미움받을 용기 2' 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치는 편지.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언뜻 알기로,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 내면의 열등감'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들었다. 성격 장애 중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고 심한 무력감마저 느끼는 이들이 바로 자기애적 성격 장애, 나르시시스트이다. 

심한 열등감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만든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믿지 못해서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자신에게 온 신경을 쓰고 있으니 자기감정, 자기 자신 밖에는 안중에 없다. 

 어떤 꼬마 아이가 공 100개가 담긴 커다란 바구니를 안고 간다. 혹시 하나라도 떨어질까 봐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데 누가 한 번 건드리기라도 하면 공 떨어진다고 노발대발이다. 바로 이런 상황 아닐까 싶다.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이들은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뭔가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에 따르면, 가치 있는 일에 종사해야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바꿔 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지 않다면, 사회적으로 힘이 없다면, 가치 없는 존재들이니 무시해도 된다. 이는 타인을 쓸모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아들러가 '분업' 관계에 대립해서 '교우'관계를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분업'은 분명한 대가를 바라는 관계인데, 자본주의 경제와 잘 맞다. 이익 집단에서 통용되는 가치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바로 이 '분업'의 관계를 넘어설 줄 모른다. 

그래서 아들러는 가르치고 있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분업' 관계를 넘어서 '교우' 관계라고. 


책에서 교육자는 학생들과 '교우'관계를 맺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교우 관계를 확장하면 비로소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주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 진정한 '사랑'이고 나르시시트들이 꼭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더 인정받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는 자칫 나르시시트들을 더 키울 수 있다. '분업' 관계가 더 확대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책에서 아들러는 어떤 일에 종사하던지 '일에 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가 어떤 다양한 일에 종사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든지 간에 '교우'관계로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아들러가 말한 건전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나르시시스트들도 '사랑'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나르시시스트에게 딱 하나 빠진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을 진정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다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들러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자립'도 어렵다고 보았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상대를 향해 비난을 쏟아야 해결할 수 있는 나르시시스트들은 타인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든, 자신을 찬양하는 아부꾼으로 두든 타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가 내 편이 되어 주는 자기 사랑. 이 사랑을 나르시시스트들은 깨달을 수 있을까? 


"미움받을 용기 2"가 진짜 필요한 자들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이유 없이 나르시시스트들로부터 미움받고 있는 이들이 자기 위안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위험한 일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의 학대를 견디는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일종의 사기 사건과 비슷하다. 관계의 사기 사건! 나르시시스트는 '나'와 진솔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처음부터 사기꾼에게 걸린 것과 같다. 이런 관계는 빨리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범자가 될 뿐이다. 이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 변화가 가능하다면. 

 나르시시스트들에게도 사랑할 용기가 주어지길 바라본다. 






*"미움받을 용기 2",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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