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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달 Jun 09. 2023

14살, 사춘기 딸과의 북클럽

엄마표는 모르지만 책 모임은 하고 싶어

#단 하나 외주줄 수 없는 것

  나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큰 딸은 14살, 작은 아들은 12살이다. 워킹맘이자 육아독립군이기에 내 아이들은 돌 때부터 가정식 어린이집에 다녔다. 4살부터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봐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저녁 6시에 하교하는 협동조합 방과후에 보냈다. 직장, 살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버거운 시기였다. 남들과는 다른 선택임을 알았지만 신뢰할 만한 육아 동지가 필요했다. 부모가 운영을 함께 하는 공동육아 시스템은 내 뜻과 부합했다. 좋은 이웃과 선생님들의 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딸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다. 다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후는 아동이 없어 결국 문을 닫았다. 나의 육아 파트너들이 사라졌다. 지금부터는 아이의 성적표가 곧 엄마의 성적표인 것 같다. 

  공동육아는 대안교육이지만 어떤 이들은 '또 하나의 사교육'이라 부른다. 씁쓸하지만 완전 틀린 소리는 아니다.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 및 교육에 대해 부모 조합원들은 매번 치열하게 토론하고 교육받지만, 정작 아이의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거기까지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엄마표'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ORT(옥스포드 리딩 트리)를 직구하고 만점왕 등 문제집을 사고 스터디 플래너나 칭찬 스티커도 도입해 보았다. 문제는 '꾸준함'이다. 하루 30분이면 될텐데 '꾸준히' 30분을 내는 게 어려웠다.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던 날,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온 날, 이렇게 한 두번 빠지면 되돌리는 건 어려웠다. 결국 다 때려쳤다. 플래너와 스티커는 버렸고 먼지만 쌓인 ORT와 문제집은 당근했다.

  욕심내지 말자. 엄마표 딱 하나만 하자. 내가 아이에 관해 외주줄 수 없는 단 한가지는 뭘까?

  그것은 책읽기였다. 


#책읽기는 즐거운 것

  명색이 교사이기에 학부모들에게 교육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집에서 무엇을 해줘야 하냐고. 그럴때 마다 "독서와 글쓰기"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영상을 접하는 지금 세대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문해력'이다. 하지만 독서가 당위성때문에 강요된다면? 결코 자발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할 때 진짜 변하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 시기에는 방문판매가 유행이었는데 엄마가 외판원의 꼬임에 넘어가 70권짜리 ABC 세계명작 시리즈를 사주셨다. 다세대 주택의 꼭대기였던 우리 집에는 다락방과 옥상이 있었고 주로 거기에서 책을 읽었다. 미하엘 엔데의 '짐크노프와 기관차 루카스', '끝없는 이야기' 를 읽으며 상상에 빠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왜 책을 좋아할까? 찐 ENFP라 호기심이 많고 상상을 즐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나 가보지 않은 세계를 동경하고 겪어보지 않는 일을 궁금해 하는데 책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영상 속 판타지도 훌륭하지만, 영상을 보면서는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영상 속 인물에게 아무리 공감을 해도 내가 그 인물이 된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그런 느낌이 든다. 나의 내면에서 그 사람이 살아 숨쉬는 느낌. 아마 활자 속 빈 공간을 통해 '감정이입'과 '몰입'이 작동하나 보다.

  아이들도 나처럼 '책읽기는 재밌고 즐거운 것'이라 느꼈으면 좋겠다. 언제 그런 느낌이 들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공감해주고 함께 나눌 때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 취미 모임 등은 삶의 활력이 되니까. 그래서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책으로 노는 '북클럽'을 생각했다.

   

#시작은 도서관

  사실 처음부터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낸 것은 아니다. 시작은 도서관이었다. 큰 아이 초1때 육아휴직을 했었는데 당시 도서관에서 '책읽는 어머니'라는 10강짜리 프로그램을 주최하여 참가했다. 그때 들었던 강의 중 독서교육의 대가이신 '김은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왜 독서가 취미가 되어야 하는지, 외국에서는 북클럽이 어떻게 활성화되어 있는지. 외국에는 북클럽용 핑거푸드 레시피 책도 있고, 청소년 전용 도서관의 디자인도 남다르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노르웨이 청소년 도서관: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연결을 바라는 청소년의 성향을 잘 담아냈다. (출처: 북DB)

  책읽기 수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하신 '송승훈' 선생님의 글과 강의도 내마음을 두드렸다.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건들거리는 게 사라진다고. (고등학교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표현! ) 

  마음 먹은 것을 곧바로 실행하는 내 성향 덕에 딸 아이와 친구들의 독서 모임이 만들어졌다. 주로 공동육아 동지들이었지만 반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엄마의 아이도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주민지원사업으로 독서동아리 등록을 하면 공간을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였다. 책 내용으로 놀기도 하고, 낭독도 하고, 만들기도 했다. 한 책을 가지고 4달을 만났고 한 책이 끝나면 나들이를 갔다. 그렇게 1년 동안 아이들과 엄마들이 재밌게 책모임을 했다. 복직을 하고서도 모임은 근근히 유지되었지만 바빠진 삶 탓에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파주 <지혜의 숲> 나들이 : 초등 2학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독서록을 쓰는 게 기특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휴일에도 어딜 나갈 수 없는 시기. 아이들은 5학년이 됐고, 줌에서 다시 독서 모임을 열었다. 마침 도서관에서 추진한 독서공동체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으며 활동할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의 독서모임: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모임도 변화하고 성장한다.

#기록과 성장

  14살, 청소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엄마 말은 다 반대하고 싶은 나이지만, 이상하게 독서 모임만은 순순히 따라 온다. 오히려 짬밥이 늘어서인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다. 엄마들의 바램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독서 모임을 꾸리는 것이다. 사실, 갈 길이 멀다. 

  나름 수업은 자신 있지만 청소년 독서 모임을 이끄는 것은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친자식이 함께 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을 유지하고자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분명 무언가 있다. 기록을 통해 의미를 발견해 보기로 했다.

  8살에 시작하여 14살이 된 아이들의 북클럽. 그 기나긴 여정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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