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내가 수락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연극 무대에 갑자기 섭외가 되어 올라가게 되었다 사전에 대본도 받지 못했는데 잠시 후면 무대에 올라가야 했다. 급하게 대본을 달라고 소리쳤지만 모두가 각자의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러던 중 어떤 아는 형이 자신의 대본을 보여주며 네 대사가 이 부분이니 어서 외워라, 아니면 메모라도 하라 하였다. 서둘러 외우려했으나 대사가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과자 봉지 같은 것을 잽싸게 쥐고는 지나가는 한 여자아이의 펜을 빼앗아 허겁지겁 적어 나갔다. 피로회복에는 홍관장이지라는 것이 첫 대사였다. 어디선가 그 문장은 크고 당당하게 외쳐줘야한다고 디렉션을 주는 것 같았다. 알고보니 홍관장 사장님쯤 되는 사람이었다. 내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크고 당당하게 외쳐보는 그 자체에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구태여 그 대사를 두 번 외치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땅히 보여야 할 어떤 배우가 무대 위에도, 아래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라 인지한 상태임에도 속이 후련했다-